첫 화면 > 아름다운 한글 > 한글의 조형성 > 한글 서예/방각본체

한글 서예/방각본체

1 2 3 4 5 6 7 8
1.2 초창기 한글의 형태는 한자의 서체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한자의 형태와 조화를 이루는 서체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여 왔다. 그러나 언어 행위가 단순히 말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부터 언어는 그리고 언어를 매체로 하는 제반 행위는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같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의지는 말이 가지고 있는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문자 곧 글자라는 매체를 찾아냈다. 이러한 문자 체계의 등장은 자연발생적인 양상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우리글인 훈민정음 곧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의 등장은 인위적인 창제라는 점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하겠다.

우리의 경우, 말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한때 한자를 가져다 쓰기도 하였지만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새로운 문자 체계의 창제라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바로 훈민정음(한글)의 창제가 이에 해당한다.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 안에는 우리말에 사용하는 소리에서는 그다지 변별적 자질을 가지지 못하는 음가를 나타내기 위한 문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훈민정음이 추구한 문자 체계는 창제 당시에 알고 있었던 주변의 모든 언어에서 나타나는 소리를 적기 위한 문자 체계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로소 <우리말을 기록한다> 곧 <한글을 쓴다>라는 행위가 가능해졌다. 이전까지의 쓴다는 행위는 모두 <한글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한자(漢字)를 쓴다>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글을 쓴다>는 새로운 행위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 점에 주목하여 국어사나 문학사를 기술함에 있어 한글 창제를 시대 구분의 기준점으로 삼기도 하였다. 조윤제의 『國文學史』를 비롯하여,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인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사들이 이를 시대 구분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자라는 매체를 가지고 기록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기록 행위라는 점에서, 결국 말하기보다는 글쓰기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기에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말을 우리글로 곧 우리 문자인 한글로 기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기록 행위의 중심은 <한글로 쓰기>가 아닌 <한자로 쓰기>였다. 한글로 기록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자로 기록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으며, 한글로 기록하는 것은 여전히 보조적인 단계에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 한글로 기록하는 것이 주(主)가 되건 종(從)이 되건, 이것은 모두 한자와 한글을 함께 기록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글의 외양적 형태 곧 한글의 서체(書體)는 한자의 외양적 형태 곧 한자의 서체(書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훈민정음을 창제하던 당시에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한글의 모아쓰기 방식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모음의 위치가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둘로 나누어져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곧 ‘ㅣ’모음 계열의 형태는 초성의 오른쪽에 쓰고, ‘ㅡ’모음 계열의 형태는 초성의 아래쪽에 쓰는 모아쓰기가 이를 말해준다. 이는 결국 한글의 외양적 형태(書體)를 네모 반듯하게 하여 한자의 외양적 형태(書體)와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 하겠다.
초창기에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자와 함께 한글을 사용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언해본』 등이다. 한글을 한자와 함께 사용하기라는 작업은 이후 한문 전적의 언해 사업 등을 통하여 그 구체적인 양상을 드러내게 되며, 한글만 사용하기라는 작업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1 2 3 4 5 6 7 8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