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자와 함께 사용하는 한글이 아닌, 한글만 사용하기라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은 편지 쓰기나 일기 쓰기 등과 같은 개인의
일상적인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글만을 사용한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문헌이 당대에 인쇄된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한글만을 사용한 문헌이 인쇄된 형태로 나타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방각소설(坊刻小說)이다.
물론 방각소설 간행 이전에 한글로만 쓴 문헌을 간행한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闡義昭鑑諺解(1756년)』, 『種德新編諺解(1758년
이후)』, 『明義錄諺解(1777년)』 등의 간행 洪允杓, 『國語史 文獻資料
硏究 (近代篇Ⅰ)』, 太學社, 1993. 은 방각소설 간행 이전에 한글로만
쓴 문헌을 간행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의소감언해』는
개주한
갑인자를
사용하여 1756년 8월 이전에 활자본으로
간행하고, 1756년 8월에 광주부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다. 4권
4책으로 된 목판본을 보면, 활자본의 영향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활자본으로
인행한 것은 활자의 특성 때문에 세로뿐만 아니라 가로까지 모두 정연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특징을 목판본에서도 그대로 살필 수 있다. 더군다나
소자(小字)를
사용한 부분을 판각한 방식을 보면 글자의 높이 곧 세로는 크기가 같고 가로
곧 글자의 폭을 절반으로 줄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이는 비록 순 한글로만 판각된 문헌이라고는 하지만 원고본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
개주갑인자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한글
판각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겠다.
『종덕신편언해』는
상·중·하 3권 2책의 목판본이다. 이는 『종덕신편』을
1758년에 간행하고 이어서 언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 역시 위의 『천의소감언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세로는 그 기준을 가지런하게 하고 있으나 가로로는
조금씩의 넘나듦이 있어 한자와 함께 쓴 한글 문헌이라는 성격을 조금은 가지고
있으나 활자본 방식의 조판이라는 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지는
아니한다.
『명의록언해』는 정유 한글 목활자본으로 간행하고, 이를 다시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 역시 활자본이라는 점에서 한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겠다.
이러한 문헌 가운데 방각소설 간행과 관련하여 주목할 문헌은 1852년에
간행한 『태상감응편도설언해』이다. 이는 순 한글 문헌은 아니다. 한문을 먼저
수록하고 이를 언해할 때에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때 나타나는 한글의
각자(刻字) 방식이 방각본과 매우 유사함을 보인다. 한자 활자와 함께 사용하던
한글 활자를 사용하여 인행한 순 한글 활자본이라는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한글만을 써서 판각하는 것이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를 보여주는 자료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의 간행연도가 1852년이기에, 이보다 앞선 방각소설을
간행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사용된 서체가 방각소설에
사용된 서체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방각소설 간행에 사용된 서체가 오히려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