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소설이 간행되었다는 것은 한글로만 쓴 필사본 소설이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글로만 쓰기라는 행위가 하나의 행위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사용한 서체가 정확히 어떠한 형태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글로만 쓴 필사본 소설을 언급할 때, 매우 예외적이고
특징적인 서체인
궁서체
또는 궁체라고 하는 한글 쓰기를 말하는데, 이 궁체의
성립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역시 불명확하다.
만약 방각소설을 처음 간행하는 시기에 궁체가 가장 보편적인 한글의 서체였다면
방각소설의 서체도 이를 따랐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방각소설의
간행에 사용한 서체는 궁중에서 사용한 서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서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방각소설 간행이
갖는 서체사적(書體史的) 의미가 드러난다.
서책을 구분하는 경우, 흔히 문자를 기록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따라 사본과
인본으로 구분한다.
목필(木筆),
도필(刀筆),
모필(毛筆) 등과 같은
붓으로 직접 쓴 책본(冊本)을 사본(寫本)이라고 하고,
각판(刻板),
주자(鑄字),
목자(木字),
도자(陶字),
등사(謄寫),
영인(景印)을
통해 나온 책본을
인본(印本)이라고 한다. 李秉岐, 『가람文選』, 新丘文化社, 1966,
372면.
또한 오늘날에는 기술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서책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령 슬기틀(computer)의 발달로 말미암아 등장한 서책인 전본(電本,
전자책, e-book)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방각소설의 간행은 곧 <한글로만 쓴 판본>의 등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필사본으로 유통되는 한글 서체와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각본으로
유통되는 한글 서체, 이 중 어느 것을 통하여야 서체의 통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방각소설의 간행과 유통을 통하여 한글 서체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