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자와 함께 사용한 활자본의 한글 서체
한자와 함께 쓰는 활자본의 한글 서체는 무엇보다도 한자 서체와의 조화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한자는, 물론 시대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같은 정방형의 네모난 글자라는 점에서, 이에 어울리는
한글 역시 한자와 같은 네모난 글자여야만 한다. 실제 한자와 한글이 함께
구현된 문헌을 보면, 한글의 글자 크기가 한자에 비하여 약간 작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활자 하나가 차지하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에 있어서만큼은
한자와 한글이 모두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협자(俠字)로
한글을 사용하는 경우, 가로의 비율만을 줄이지 세로의 길이는 줄이지 아니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면적의 비율로 따졌을 때, 협자로 된 한글의 활자
크기는 한자의 활자 크기에 비하여 1/4의 비율을 보이지 아니하고 1/2의
비율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하겠으나,
협자로 사용한 한자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한자와 함께 사용된 한글 서체―엄밀히 말하면 한글 활자체이지만―는
한자 서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형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활자의 크기는 균일하여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한자의 활자체가 결정되고, 이에 어울리는 형태의 한글 활자체를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제성 때문에 비롯된 현상으로 보인다. 이같은
정제성은 단순히 정제성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판 과정에 있어서 작업의
효율성을 함께 지향한 결과라 하겠다.
2) 한자와 함께 사용한 판본의 한글 서체
한자와 함께 쓰는 판본의 한글 서체는 두 경우로 나누어서 검토해야 한다.
첫째는 활자본을
번각하여
판본을 만드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판하본이 되는
활자본 인쇄물이 지니고 있는 정제성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기에, 여기에
사용하는 한글의 서체는 앞서 검토한 활자본의 한글 서체와 크게 다르지 아니하다.
둘째는 활자본을 번각하는 것이 아니라 판본을 새로 만드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판하본의 역할을 담당하는
등재본을
정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를
정사하는 과정에서도 한글만을 정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와 함께 한글을
정사하는 것이기에, 한글 서체는 여전히 한자 서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측면을 도외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만들고자 하는 판본에 선행하는 문헌들이
모두 활자본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면, 판본에 사용할 한글 서체는 이미 활자본의
한글 서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서 활자본의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이런 자문을 해본다. 과연 우리의
경우 활자본 인쇄물은 대중적인 것이었을까? 우리의 활자본은 서구의 활자본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활자본을 인쇄하는 기술적 측면에 있어서도 또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서구의 경우, 기계적인 압판인쇄의
방식을 사용하여 인쇄를 계속하여도 활자가 비뚤어지지 아니하도록
식자하기
위해서 활자 하나 하나의 형태를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활자 인쇄는
일정한 부수 이상의 인쇄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밀랍과 같은 것에 글자를 심어 작업을 하는 것은 결국 일정한 부수 이상의
인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히 현전하는 활자들의 배면을 보면
이를 완전히 고정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활자본 인쇄물은 서구와 달리 실용적인 목적으로 인쇄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보존용으로 인쇄한 인쇄물이라는 성격이 강한 것이 아닐까?
보급용이 아닌 보존용으로 인쇄한다는 것은 인쇄 부수가 얼마 되지 아니하였고,
이로 인하여 오늘날 이러한 문헌이 희소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처럼 보존용으로
활자 인쇄물을 만들어 정전을 확정하여 보관하다가, 이후에 대량 보급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목판을 이용하여
번각본을
생산하는 것이 서책 생산의 주류를 이룬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아니할까?
결국 번각의 방식으로 판본을 제작할 때 한자와 함께 사용할 한글 서체의
경우, 판하본(등재본)의 기능을 담당하던 활자본이 가지고 있던 활자체의
제약으로 인하여, 한글 역시 한자와 조화를 이루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로 인하여 한글 역시 네모난 형태의 한글 서체라는 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하겠다.
또한 이전에 활자본으로 간행한 적이 없었던 문헌을 판본으로 처음 제작하는
경우에도, 판하본으로 사용할 정사본의 제작 과정에서 한자와 한글이 함께
정사되는 것이기에, 한자와 조화를 이루는 한글 서체라는 제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판하본으로 사용할 정사본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활자본이 보여주는 정제성이라는 제약이 은연중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처음 판본으로 제작되는 문헌에 사용하는
한글 서체라 하여도 역시 한자와 조화를 이루는 서체여야만 한다는 제약을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 한글만 사용한 판본의 한글 서체
한글만을 사용한 활자본의 경우, 활자 제작 단계에서부터 한글로만 된 문헌을
인쇄하기 위해서 한글용 활자를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한자와 함께 사용하기
위해서 활자를 제작한 것이고, 이렇게 제작된 한글용 활자만을 가지고서 인쇄한
것이 한글만을 사용한 활자본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활자본의 한글 서체는
제작 단계에서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한자 서체와의 조화라는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앞서 검토한 한자와 함께 쓴 활자본의
한글 서체에 미루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한글로만 된 활자본이 아닌, 한글로만 된 판본에 사용한 한글
서체를 검토하기로 한다. 한글로만 구성된 판본의 한글 서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방각소설에 나타나는 한글 서체이다.
방각소설에 사용된 한글 서체 역시 앞서 언급한 한자와 함께 쓴 활자본이나
판본의 한글 서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글로만 쓴 필서체 한글 문헌이 가지고 있는 전통―그 구체적인 양상은 앞으로
상세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하면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이것은 기존의 것과 같은 것이다> 하면서
나타난다. 이것이 새로운 것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를 전통(익숙한 것 또는
관습적인 것)과 창조(새로운 것 또는 개성적인 것)라는 말로 곧잘 표현한다.
방각소설이 처음 등장하는 경우, 이것 역시 기존의 활자본이나 판본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인쇄된 기존의 문헌에 나타나는 한글
서체가 지닌 전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자와 함께 쓰는 한글이라는
전통이다. 이는 곧 네모난 글자라는 전통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전통에
충실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글자의 획 하나 하나를 구분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판본은 가능하다면 필흔(筆痕)을 남기지 아니하면서
각각의 글자마다 독립된 형태를 취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면서 한 행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일정하게 하려는 노력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은 결국 한자와 함께 쓰는 한글 서체가 가지는 전통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한글로만 쓴 필서체 문헌―그 중에서도 필사본 한글소설―이
가진 전통이 더 크게 작용한다.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소설을
방각하는 현상은 이에 앞서 필사본 소설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때 유통된 필사본 소설들은 한글로만 쓴 소설들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따라서 방각소설 간행 이전에 한글로만 제작된 서책이 유행하였다는
점에서 한글만을 쓰는 서체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한글
서체의 전통이 정확히 어떠한 양상을 띄는 것이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여기에 필흔이 남아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방형에서
장방형으로의
서체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방각소설에 사용한 한글 서체는 위의 두 전통 위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필서체의 전통이 더 강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첫째는 필흔이 나타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둘째는 한 행에
일정한 수의 글자를 배치한다는 전통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흔히 방각소설을 해제할 때 사용하는
자수부정(字數不定)
또는 ○○자내외(○○字內外)라는
용어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는 곧 방각소설에 사용한 한글 서체가 활자본의
전통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짐을 말하며 정방형의 한글 서체라는 통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짐을 의미한다.
4) 판각작업이 용이한 새로운 서체의 추구--한글만 사용한
방각본의 한글 서체
그러나 한편으로 방각소설의 서체는 필서체가 가지고 있는 약점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 새로움은 방각소설이 판목에 새겨지는 것이라는 특성과
관련된다. 필사본이 단순히 쓰는 것이라면 방각본은 새기는 것이다. 곡선만으로
구성된 섬세함만을 새기는 것보다는 직선과 유사한 간결함을 새기는 것이 작업의
효율을 가져온다. 마치 구텐베르크의 작업이 자형의 통일을 가져왔던 것처럼,
방각본의 작업 역시 자형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단순히 문헌을 보존하거나 정전을 확정하기 위해서 문헌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
서체라기보다는 시장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문헌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 실용적인
서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필사본 소설책에 사용한 한글 서체는 부분적으로
정방형으로부터의 탈피를 이미 보여 주었다. 이러한 양상은 곧 방각본에 사용한
한글 서체가 정방형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필사본 한글 서체는 매우 다양하여, 서체의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로 보인다. 이들 서체 중에서 어떤 것은 서체가 지닌 미적인
특성을 추구하다가 궁서체라는 지극히 아름다운 서체로 발전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잡체(민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작대기체(?)라는 지극히 간결한 단계에
머물기도 하였다.
방각소설의 서체가 궁서체와 같은 지극히 아름다운 서체를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방각소설은 매우 대중적인 소비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서체
자체가 판각 작업의 편의성과 직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편의성의 추구,
바로 작업이 용이한 한글 서체의 추구가 바로 간결한 새로운 한글 서체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한글 서체의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글로만 구성된 인본의 등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사본과 인본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밀한 모사(模寫)를 계속한다고
하여도 동일한 형태의 사본을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며
일정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반면에 인본의 경우는 이 한계를 벗어나 무수한
복제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물론 판목의 마모에 따른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어쩌면 무한 복제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무한 복제에 의하여 유포된 동일한 형태의 서체들, 이것이 한글 서체의 통일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방각본(坊刻本)의 형태로 간행된 서적들이 대부분 서민의 요구에 부응해
나타난 서적이라는 점에서, 방각소설(坊刻小說) 역시 서민의 요구에 부응해
나타난 소설이라고 하겠다. 방각소설의 출현은 기존의 소설 유통 방식인 필사본만으로는
이미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던 소설 독자층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그동안 여러 형태로 상업적 자본을 꾸준히 축적하여
왔던 비교적 영리에 밝은 상인계층이 방각업자로 나서게 되어 방각소설 간행과
관련된 작업을 총괄하게 된 것이다.
방각소설이 인본(印本)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사본(寫本)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제성에 비하여 한층 엄격한 외양적(外樣的) 정제성(整齊性)을
갖추어야만 하였다. 이를 위하여 초간본(初刊本)의 등재본(登梓本)은 정사(精寫)된
사본(寫本)이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개판(改板)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외양적
정제성이 무너지기도 하고, 내용의 심각한 축약이나 변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는 방각소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속성, 곧 시장적(市場的) 거래(去來)라는
속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러한
점이 바로 방각소설의 중요한 특성이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