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로 잡은 한글 글꼴 변화의 시기는 1894년 고종의 국한문 혼용에
대한 칙령이 공포되면서 언문이 국문이란 명칭으로 격상된 후 1910년 한일합방이
되기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의 한글 글꼴은 대단히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조선중기의 큰글자 필사체
글꼴에서 아주 작은 그림 글씨체인 명조체 유형의 인사체(印書體)로 변하였다.
이 시기에 나온 목판본으로는 1897년에 국문정리판으로 찍은 국문정리가 있고,
사설 출판으로 나온 방각본 목판의 글꼴들이 있는데 1902년에 나온 유충렬전,
1907년에 나온 초한전 등 전주지방의 완산방각본, 경기지방의 경판방각본 등이
있다. 국문정리판의 글꼴은 현대의 명조체(바탕체)의 느낌이 나고, 방각본의
글꼴은 자형을 상하폭이 작은 모양으로 나타냈고, 세로서선의 끝부분은 뾰족한
송곳모양으로 나타냈으며, ㅇ을 △ 모양으로 나타내는 등 국문정리 글꼴과는 다르게
나타냈다.
활자본으로는 1895년에
학부인서체병용
한글자(목활자)로 찍은 국민소학독본과
후기교서관체꼴(목활자)로
찍은 조선지지가 있고, 1896년에
재주정리자로 찍은
신정심상소학, 1908년에 현대활자인 납활자로 찍은 국어문전음학 등이 있다.
이러한 활자들의 글꼴은 현대 명조체 유형과 비슷하되 상하폭이 큰 자형으로 서선이
가늘고 힘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