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에는 조선 말기부터 활발했던 새로운 활자 개발이 계속되었으나 그후
1910년부터 1945년 해방시기까지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으로 한글글꼴 개발은
침체기를 당하였다. 이 시기에는 1915년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번각 발행한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에 쓰인 조선어 새활자체가 개발됐고, 1933년에는 동아일보가
공모한 작품 중
이원모체를
채택하여 본문 활자체로 활용하였으며, 조선일보사에서도
1930년대에 여러 번에 걸쳐 본문용 새활자체를 개발하여 활용하였다. 조선어독본체는
자형이 정사각형에 가깝고 점획간의 여백을 많이 두어 시원한 멋을 풍기는 반면
글자간의 대소조화는 뒤떨어진 편이다. 각 신문사 활자체는 이원모 글자체를 개발
활용하거나 딱딱한 느낌의 명조체 유형, 부드러운 필사체유형의 작은 활자, 네모
반듯한 고딕체 유형의 큰활자를 개발 활용하였다.
1930년대 말에는 박경서 새활자체가 나와 해방 이후까지 여러 분야 출판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이 본문용 활자체 글꼴은 앞의 이원모 활자체보다 상하폭을
크게 나타내어 키가 크고 자모음의 결구를 조화롭고 안정감 있게 꾸몄으며, 서선을
가늘게 나타내어 가독성 높은 활자로 돋보인다.
1946년부터 6.25발발 직전까지는 세로쓰기 활자로 개발되었던
최지혁체,
한성체,
박경서체 등으로
가로짜기를 실용화했으나 조화롭지 못한 결점이 많이 발견되는 등 과도시기였다.
1947년에는 공병우타자기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타자기의 한글 글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