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ㄱ
‘ㄱ’ 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서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자형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15세기 당시에는 초성자에 쓰인 ‘ㄱ’이든 종성자로 쓰인
‘ㄱ’이든 차이가 없었다. 물론 그 크기에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극’은
초성의 ‘ㄱ’과 종성의 ‘ㄱ’이 크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 글자를 뒤집어
놓으면 ‘는’과 동일한 글자가 되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종성자로
쓰인 ‘ㄱ’ 자의 크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극’ 자의 경우에는 초성에 쓰인
‘ㄱ’보다도 종성에 쓰인 ‘ㄱ’의 크기가 조금 크게 변화되었다. 그래서 ‘극’을
뒤집어 놓은 모습이 ‘는’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ㅏ, ㅑ, ㅓ, ㅕ’ 밑에 쓰인 ‘ㄱ’자는 글자의 크기가 더욱 작아졌다.
그리하여 ‘각’에서 초성 ‘ㄱ’에 비하여 종성 ‘ㄱ’의 크기가 상당히 작아졌다.
그러나 자형에는 변화가 없었다.
‘ㄱ’자의 자형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모음자 ‘ㆍ’와 결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16세기에 들어서서 변화된 것이다. 즉 ‘?’는 ‘?’로 변화하여서
‘ㄱ’의 세로줄기는 왼쪽으로 구부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514년에
간행된 ≪속삼강행실도≫에 처음 나타나며, 그 뒤로 1612년에 함흥에서 간행된
≪연병지남≫ 등에 이어져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 자형이
병존하였다.
‘ㄱ’이 ‘ㅏ, ㅓ, ㅑ, ㅕ’ 등의 앞에서 오늘날과 같은 ‘가’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즉 1852년에 최성환에 의해 간행된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처음 보인다. 그 이후로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의 ‘ㄱ’은 오늘날의 ‘가’에
보이는 ‘ㄱ’과 같은 자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②
ㄴ
‘ㄴ’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화가 없는 글자 중의 하나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ㄴ’은 왼쪽의 세로줄기나 아래의 가로줄기나 그 길이가 거의 동일하였었다.
특히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에는 더욱 그러하였다(예: 나). 그러나 모음이
아래에 올 때에는 왼쪽의 세로줄기 길이가 가로줄기보다 짧았었다(예: 노,
느).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이후에 간행된 모든 문헌이 이 원칙에
따랐다. ‘는’과 같은 글자는 초성에 쓰인 ‘ㄴ’이나 종성에 쓰인 ‘ㄴ’의
크기가 동일하였었지만, 17세기에 와서 종성에 쓰인 ‘ㄴ’이 초성에 쓰인
‘ㄴ’보다 더 크게 쓰이게 되었다.
‘ㄴ’이 ‘ㅏ, ㅓ’등과 같이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에 가로줄기의 끝이
위로 올라가게 된 것은 18세기 말부터 조금씩 나타나다가(1774년의
≪삼역총해≫나
1777년의 ≪명의록언해≫ 등) 19세기 말에 와서는 일반화되었다(1882년의
≪경석자지문≫ 등).
③ ㄷ
‘ㄷ’은 창제 당시에 오늘날의 글자 모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즉 현대의
‘ㄷ’에 비해 위의 가로획의 왼쪽 끝이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즉 위의 가로줄기의
길이가 아래의 가로줄기의 길이보다 길어서, 왼쪽으로 조금 튀어나온 형상이었다.
이러하던 것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1575년 광주에서 간행된 ≪광주천자문≫이나 1583년의 ≪석봉천자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ㄷ’은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되었다.
④ ㄹ
‘ㄹ’도 오늘날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창제 초기의
‘ㄹ’은 위의 가로줄기나 아래의 가로줄기의 길이가 동일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초부터 아래 가로줄기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져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⑤ ㅁ
‘ㅁ’은 창제 당시의 자형과 동일하여서 변화를 겪지 않은 글자이다. 단지
초성에 쓰인 ‘ㅁ’과 종성에 쓰인 ‘ㅁ’의 크기에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모든 자음의 변화와 동일하다.
⑥ ㅂ
‘ㅂ’은 창제 당시의 자형과 동일하여 변화가 없었던 글자이다.
⑦ ㅅ
‘ㅅ’은 원래 창제 당시에는 왼쪽의 삐침줄기와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만나는
곳이 꼭대기여서 오늘날처럼 왼쪽의 삐침줄기의 조금 아래에서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시작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481년의
≪두시언해≫이며 1496년에 간행된
≪진언권공≫에서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다.
‘ㅅ’이 ‘ㅓ, ㅕ’ 등과 통합될 때에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아래로 쳐져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62년에 경상도에서 간행된 ≪지장경언해≫부터이며
19세기 말에는 일반화되었다.
⑧ ㅇ
‘ㅇ’은, 창제 당시에는 완전한 동그라미였다. 이러한 모습이 ‘?’(옛이응)처럼
꼭지점을 달기 시작한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에서부터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이다.
⑨ ㅈ
‘ㅈ’은, 창제 당시에는 3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가로줄기의 중간에서
왼쪽의 삐침줄기와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가로줄기의
끝에서 왼쪽 삐침줄기가 시작되는 2획으로 변화한 것은 1612년에 간행된
≪연병지남≫에서부터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세기
말이다.
⑩ ㅊ
‘ㅊ’의 변화는 ‘ㅈ’과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지 ‘ㅊ’의 꼭지점은
원래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 ‘ㅈ’자와 붙는 획이었는데, 이 꼭지점이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게 그어 ‘ㅈ’과 떨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부터이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나타나게 된 것은 19세기 중기
이후이다(1869년의 ≪규합총서≫).
⑪ ㅋ
‘ㅋ’은 ‘ㄱ’에 가로줄기를 수평으로 그은 모습으로 창제된 것이다. ‘ㅋ’이
‘ㄱ’과 같이 ‘ㅏ, ㅓ’ 등의 모음이 올 때에 세로줄기가 왼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게 된 것은 19세기 중기였다(1869년의 ≪규합총서≫). 19세기
말에 와서 이러한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ㅋ’이 ‘ㄱ’에 가로줄기를 수평으로 그은 것이었지만, 이것이 수평이 아니고
위로 약간 삐쳐 올라가게 된 모습은 17세기에 보이기 시작한다. 1682년의
≪마경언해≫나 1698년의 ≪신전자초방언해≫ 등에 보이기 시작하여 1736년에
간행된 ≪여사서언해≫에서는 그 가로줄기의 획 끝이 ‘ㄱ’의 모서리에 닿도록
한 자형도 보인다.
⑫ ㅌ
‘ㅌ’은 원래 ‘ㄷ’의 가운데에 가로줄기를 그은 것이었다. 그러나 위의
가로줄기 ‘ㅡ’에 ‘ㄷ’을 아래에 붙여 쓴 것과 같은 모습은 1514년에
간행된 ≪속삼강행실도≫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17세기에도 간간이 보이다가(1682년의
≪마경언해≫), 18세기에 와서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1748년의
≪동문유해≫를 비롯하여 많은 문헌에 두 가지 자형이 공존하다가, 19세기
말에 와서는 완전히 ‘ㅡ’에 ‘ㄷ’을 붙인 자형으로 변화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심지어 ‘ㄷ’의 위에 가로줄기인 ‘ㅡ’를 아래로 비스듬히 내리긋는
자형도 보인다. 1852년의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그 예가 보인다.
⑬ ㅍ
‘ㅍ’은 위와 아래의 가로줄기와 왼쪽과 오른쪽의 세로줄기가 모두 수평과
수직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그래서 가로줄기와 세로줄기의 선은 서로 붙어
있었는데 이것이 떨어진 자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부터이다.
가로줄기와 세로줄기가 붙은 자형과 떨어진 자형이 공존하다가 떨어진 자형이
우세하게 나타나게 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⑭ ㅎ
‘ㅎ’은 ‘ㆆ’에 꼭지점의 세로줄기가 서로 붙어 있던 것이다. 꼭지점과
‘ㆆ’이 서로 떨어져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612년에 간행된 ≪연병지남≫부터이다.
17세기에 구례에서 간행된 ≪권념요록≫ 등에 보이다가 18세기의 문헌에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19세기 말에 일반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