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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육 과정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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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교육과정이란 ‘무슨 과목을, 누구에게, 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가’를 담은 문서이다. 즉, 어떤 교과의 교수·학습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을 기술한
문서로서 전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과 교육과정은 초·중·고등학교 국어 과목에서 다루어야 할 국어과의 교수·학습 목표와 내용, 방법, 평가 방안 등 국어과 교육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문서로 정리해 놓은 자료를 가리킨다. 교육과정은 크게 국가 수준, 지역 수준, 학교 수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교육과정이라 하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가리킨다. 특정 시기의 교육과정은 당대의 교육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제정되기 때문에, 당대의 교육 철학과 수준, 체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변천사는 곧 교육의 역사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국어과 교육과정의 변천사를 통해서, 구체적인 교육 현장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전반적인 국어교육의 역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국어과 교육과정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제정된 ‘국어과 교수요목’에서 시작되어 최근의 제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국어과 교육과정을 논한다면 개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갑신정변(1894년) 이후인 1895년에 고종 황제는 교육에 관한 칙서를 내려 각급학교의 관제를 정하고,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의 국어 관련 과목으로 ‘독서, 습자, 작문’을 지정한 바 있다. 이는 현대적 개념의 교육과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구체적인 교과목을 지정하고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교육과정의 태동기로 보기도 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조선어교육령’이 공포되면서 일본어가 ‘국어’로 명명되고, 우리말과 글은 ‘조선어’라 칭하게 되었다. 우리말이 외국어로 전락하고 만 버린 셈이다. 1937년 이후에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은 필수 과목에서 제외되어 선택(수의) 과목으로 전락하게 되고, 이후에는 아예 사용 자체를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최초의 현대적 개념의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국어과 교수요목’을 공포하게 된다. ‘교수요목’은 국어과 목표와 주요 영역별 목표, 지도상의 유의점, 시간 배정을 중심으로 2-3쪽 분량의 간단한 문서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1955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제1차 국어과 교육과정이 공포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과 공포를 거쳐 제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 이르고 있다. 국어과 교육과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구체화되고 체계화 되어 왔다.
개화기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공포된 국어과 교유과정들의 주요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화기의 국어과 교육과정>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의 말글 교육은 서당에서 한문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개화기에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국어 교육도 현재와 유사한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비록 ‘국어’라는 독립된 과목이 설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독서(讀書), 습자(習字), 작문(作文)이 교육되기 시작했다. 1906년에 공포된 보통학교령에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자와 문체, 사고 표현 능력, 덕성 함양, 보통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이를 위해 정확한 발음, 독법(讀法), 서법(書法), 작문과 습자, 한문 교육이 중심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의 국어과 교육과정>
일제 강점기는 국어교육의 암흑기라고도 불리는데, 대부분의 교과서가 일본어로 제작되고, 수업도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그 뿐 아니라, 국어는 ‘조선어’로 명명되고 학습 시간도 점차 대폭 줄이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고 기존의 ‘국어 및 한문〔國語及漢文〕’을 ‘조선어 및 한문〔朝鮮語及漢文〕’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또 1922년의 제2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조선어’와 ‘한문’을 분리하고, 우리말 교육 시간을 일본어 교육 시간의 절반으로 줄였다. 당시 초등학교의 일본어 교육 시간은 9-12시간이었다. 1938년의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우리말 교육을 선택과목으로 바꾸고 교내에서는 우리말과 글의 사용을 억제하는 국어 말살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1942년의 제4차 조선교육령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은 아예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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