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는 그동안 혼란스럽던 국어 순화 운동이 광복 이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결실을 맺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민간 단체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으로 결실을 보게 된 시기이다.
(1) 장학자료 14호(1971년)
1971년 9월 문교부는 ‘언어생활 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학생 언어
생활 순화 지침’(장학자료 14호)을 작성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전국의
많은 학교가 ‘언어 순화반’ 지도 교사를 두고 ‘국어 상담실’을 운영하였다.
언론을 비롯한 각계에서 상당한 호응이 있었으며 전국의 많은 학교가 국어순화운동에
참여하였다.
(2) 국어순화 분과위원회 설치(1976년)
1976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거리의 광고 간판이나 방송
용어, 심지어 축구 중계 해설 등에도 외래어가 너무 많이 쓰이고, 또한
좌담하는 자리에서도 외국어를 너무 많이 쓰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어린이들이
먹는 과자 이름의 90%가 영어라고 하며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시정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8월 4일에는 ‘국어 순화 운동 협의회’ 신설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였고, 11월에 ‘국어 순화 분과 위원회’를 신설하였다.
국어 순화 용어 심의는 외부에서 용어 심의 의뢰가 있을 경우에 실시하는데,
1977년-1980년에는 문교부에서 직접 국어순화분과위원회를 개최하여 용어
심의를 하고, 1981년-1984년에는 학술원에 위탁하여 그 곳에서 국어순화분과위원회를
개최하였다.
(3) 민간 운동
민간 단체들의 활동 역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국어순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첫째, 1973년부터 여러 학교에 ‘우리말 지켜 쓰기회’, ‘국어운동 학생회’
등이 결성되어 고운 말과 토박이말을 발굴 소개하고 ‘고운 이름 짓기 운동’이나
‘간판 바로 잡기 운동’, 그리고 강연회 등을 통하여, 국어 순화에 대한
정신적 자세를 확립하는 동시에 실제 순화의 실행적인 면과 지도적인 면에
힘을 기울였다.
둘째, 여러 학술 단체에서 대통령의 국어순화 지시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고
적극적인 동참과 순화운동의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셋째, 대중매체에서도 국어 순화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결과물을 발간하고 있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 국어순화와 관련된 특별
기획 형식으로 기고를 연재하여 국어 순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