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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알고 있나요?

한글에 대한 이야기 한글날에 대한 이야기
 
1. 한글에 대한 이야기
Q 한글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A 한글은 조선의 4번째 임금인 세종대왕(1397~1450) 즉위 25년인 1443년 12월에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때는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으로 불리는 글자가 완성된 것이구요. 이 이후에 이 글자에 대한 원리를 연구하여 ‘해례(解例)’를 만들고 ‘용비어천가’와 같은 작품을 통해 실제로 그 글자를 적용시켜 본 후 1446년(세종 28)에 한글이 정식으로 반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1443)년의 기록에 의하면,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Q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A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원리가 분명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문자입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의
  ‘세종어제 훈민정음’에 의하면 “내 이 윙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 노니 (내가 이를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당시 양반들의 대부분은 한문을 숭상하였기에 새로운 우리 문자를 만드는 일에 반대할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이에 왕이 직접 한글 창제를 주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흔히 집현전 학자들의 협찬을 받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든 이는 세종대왕이고, 이 문자의 사용법을 설명한 책 즉 <훈민정음>(해례본)을 지은 사람들이 집현전의 여러 학자들입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통하여 길러 낸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선로, 이개 등의 학자들을 모아 1446년(세종 28년)에 ‘언문청(諺文廳)’을 세워 훈민정음의 사용법을 해설하는 책을 짓게 하였던 것입니다.
 
Q 한글은 모두 몇 글자로 되어 있을까?
A 3.1 ‘훈민정음’ 창제 당시
  ┌ 자음 (17개)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ㆁ, ㆆ, ㅿ
└ 모음 (11개) : ㆍ,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3.2 현재
┌ 자음 (14개)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ㆁ, ㆆ, ㅿ’는 소멸)
└ 모음 (10개)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ㆍ’가 소멸)
- 이런 24개의 자모 글자를 서로 합하여 ‘ㄲ, ㄳ, ㄼ, ㄾ, ㅐ, ㅒ, ㅘ, ㅚ……’와 같은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것입니다.
 
Q 한글은 무엇을 보고 만들었을까?
A 자음은 ‘소리’에 근거하여 사람의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습니다. 즉, 발음을 할 때의 혀, 입술, 이,
  목구멍의 변화를 잘 관찰해서 그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 ‘ㄱ, ㄴ, ㅁ, ㅅ, ㅇ’를 만들었습니다. ㄱ과 ㄴ은 혀가 입안에서 구부러지는 모습을 본따고 ㅁ은 입 모양, ㅅ은 이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모음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본 요소인 ‘하늘(천, 天), 땅(지, 地), 사람(인, 人)’의 삼재(三才)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 ‘ㆍ, ㅡ, ㅣ’를 만들었습니다.
 
Q 그러면 나머지 글자는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A 한글은 네 가지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생긴 모양을 본떠서 만드는 ‘상형(象形)’의 원리에 의해
  기본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하여 글자를 만드는 ‘가획(加劃)’의 원리, 그리고 다른 문자를 서로 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합용(合用)’의 원리, 여기에 글자를 나란히 쓰는 ‘병서(竝書)’의 원리. 이러한 원리에 근거해서 자음과 모음의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Q 자음과 모음의 이름은 어떻게 정했을까?
A ‘ㄱ’을 ‘기역’이라고 읽는 것은 언제 누가 정했을까요? 사실 이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훈민정음에는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기록해 놓지는 않았거든요. 다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1527년(중종 22) 최세진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책의 앞에 ‘언문자모(諺文字母)’라고 하여 훈민정음의 자모에 관한 설명이 있어 당시의 자모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이 책에는 자모수가 27자라고 되어 있습니다(‘ㆆ’가 빠져 있습니다).
<훈몽자회>에 보면, 자음과 모음 아래에 그 이름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적어 놓았습니다. 다만 특이한 점은 자음을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자는 이름을 두 글자로 적었구요, 초성에만 쓰이는 자는 한 글자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즉,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경우는 앞의 글자는 초성 발음을, 뒤의 글자는 종성 발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이름을 정했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면,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여덟 자는, ‘ㄱ-其役(기역)’, ‘ㄴ-尼隱(니은)’, ‘ㄷ-池末(디귿)’, ‘ㄹ-梨乙(리을)’ ‘ㅁ-眉音(미음)’, ‘ㅂ-非邑(비읍)’, ‘ㅅ-時衣(시옷)’, ‘ㆁ-異凝(이응)’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자는, ‘ㅋ-箕(키)’, ‘ㅌ-治(티)’ ,‘ㅍ-皮(피)’, ‘ㅈ-之(지)’, ‘ㅊ-齒(치)’, ‘ㅿ-而(이)’, ‘ㅇ-伊(이)’, ‘ㅎ-屎(히)’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일부 글자는 당시의 발음과 지금의 발음이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중성(모음)의 경우는, ‘ㅏ-阿(아)’, ‘ㅑ-也(야)’, ‘ㅓ-於(어)’, ‘ㅗ-吾(오)’ …… 처럼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 ‘니은, 리을, 미음, 비읍... 등등’에서처럼 첫음절은 ‘ㅣ’모음을 갖고 둘째 음절은 ‘으’ 모음을 갖는 것과는 달리, 왜 ‘ㄱ’과 ‘ㄷ’, ‘ㅅ’이 각각 ‘기역’, ‘디귿’, ‘시옷’ 등에서처럼 다른 방식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도 알겠지요? <훈몽자회>가 자음의 이름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표기하다보니까 음이 비슷한 한자나 혹은 한자의 뜻을 이용하느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가령 ‘ㄱ’의 경우는 한자음에 ‘윽’이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비슷한 소리를 갖는 ‘역(役)’을 제시한 것이며, ‘ㄷ’과 ‘ㅅ’의 경우는 이 자음이 한자음에서 받침으로 사용된 예가 없기 때문에 한자 ‘끝 말(末)’자와 ‘옷 의(衣)’자를 제시하되, 각각 그 뜻에 해당하는 고유어 ‘귿’과 ‘옷’으로 읽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훈민정음>에서는 어떻게 불렀을까요?
<훈민정음>에는 ‘ㄱ …’ 과 같은 식으로만 써 있습니다. 이런 경우 <훈몽자회>의 초성 이름을 적는 방법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기’라고 읽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Q 한글로 쓰여진 최초의 문헌은?
A 한글로 쓰여진 첫 문헌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입니다. 내용은 조선 왕조의 창업을 찬양하는 것으로
  악장(樂章) 형식의 노래입니다. 1445년(세종 27) 4월에 권제, 정인지 등이 본문을 지었고 1447(세종 29) 5월에 간행되었습니다. 그 후 1446년(세종 28)에 문자인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훈민정음(해례본)>이 반포되고, 이듬해인 1447년에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펴냈습니다.
 
Q 한글만으로 적은 최초의 신문은?
A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은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립신문입니다. 독립신문의
  창간사에 보면, “(이 신문을) 모두 언문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또 귀절을 떼어 쓰기는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Q '한글'이란 이름은 누가, 언제 만들었나?
A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 글자의 이름은 ‘훈민정음’입니다.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당시에 한자를 ‘진서(眞書)’라고 부르며 ‘훈민정음’은 ‘언문(諺文-속된 말)’이라고 낮추어 불렀습니다. 또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글이라는 뜻으로 ‘반절(反切)’이라고도 하고 여자들이 쓰는 글이라고 하여 ‘암클’이라고 하는 등 우리 글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오경장 후 고종 황제가 ‘훈민정음’을 나라의 글이라는 뜻의 ‘국가문자(國家文字)’라고 한데서 ‘국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당시의 잡지 등의 기록으로 보아 한글 학자 주시경이 처음 붙인 명칭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은 ‘큰, 첫째, 한(韓) 나라’ 등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Q '훈민정음'은 글자의 이름입니까? 책의 이름입니까?
A ‘훈민정음’은 글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첫째,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새로운 우리말 표기 글자의 이름입니다.
둘째, ‘훈민정음’은 우리 글자 ‘훈민정음’에 대해 해설해 놓은 책의 이름입니다. 1446년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해례가 붙어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예의(例義)’와 ‘해례(解例)’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의’는 세종이, ‘해례’는 정인지를 비롯한 8명의 신하들이 만들었습니다.
현재 이 책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Q '세종어제 훈민정음'은 무엇입니까?
A <훈민정음>에는 세종대왕이 직접 쓴 글이 있습니다. ‘어지(御旨)’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의 예의(例義)에 들어 있는 것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배경과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문은 한자로 적혀 있는데, 언해본에서는 이를 우리말로 풀어서 적고 있습니다.

● ‘세종 어제 훈민정음’의 원문
世宗御製 訓民正音
세종어제 훈민정음
國之語音이 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 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 而終不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 불상유통 고 우민 유소욕언 이종부
得伸其情者ㅣ 多矣라 予ㅣ 爲此 憫然야 新制二十八字노니 欲使人人로 易習야
득신기정자 다의 여 위차 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 이습
便於日用耳니라
편어일용이

● ‘세종 어제 훈민정음’의 언해본
世솅宗御엉制졩 訓훈民민正音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 爲윙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字 노니 사마다  수 니겨 날로 메 便뼌安킈고져  미니라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아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Q 그러면,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우리 나라 사람은 무슨 말을 썼나요?
A 한글은 1443년에 창제되었습니다. 그러면 고려 시대, 삼국 시대, 또 그 이전의 시대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말과 글을 구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실수입니다. 세종 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우리 말을 표기하기 위한 ‘글’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비슷한 말을 이용하여 대화를 나누었을 겁니다. 다만, 그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한자(漢字)를 빌려 쓴 것이지요.
보통 ‘우리말’이라고 하면 ‘말’과 ‘글’을 다 일컫는 말로 쓰지만 사실 입으로 하는 ‘말’과 문자로 적는 ‘글’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은 오래 전부터 우리 ‘말’을 쓰고 있었고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는 우리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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