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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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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일제의 침략에서 벗어나 광복이 맞이하게 되었으나 국제
정세와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어 오늘날의 분단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광복 직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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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국어 순화’라는 이름으로 북한에서는 ‘말다듬기’라는 이름으로
우리말을 가꾸고 발전시켜 왔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은 모두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일본어투의 말을 비롯하여 한자어와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쓰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정부나 단체의 언어 순화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사용되는 반면 북한에서는 남한과 다르게 우리말을 다듬어
가고 있다. 또한 남한의 언어 순화 정책은 권고의 수준으로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 있으나 북한의 언어 순화 정책은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규범으로 실시되어 왔다.
그리고 현재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언어에 대하여 남한은 서울말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어’이고 북한은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어’이다. 남한의 표준어
규정은 조선어학회에서 규정한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는 1933년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고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남한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1988년
『표준어 규정』에서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의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54년부터 『조선어 철자법』을
제정하고 언어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북한은 1966년의 김일성 교시에서
따라서 ‘표준어’란 용어가 남한의 서울말로 오해하기 쉽다는 이유로 ‘문화어’라는
용어를 쓰도록 1966년의 『조선말 규범집』에서 규범화하고 있다. 언어 순화의
방향도 이러한 표준어 채택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말을 다듬는 방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정으로 현재 남과 북의 언어는 심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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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한의 국어
순화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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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순화의 역사는 대체로 주시경 선생 때부터 1945년 광복을 전후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46년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말
정화’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당시 우리말에 남아 있던 일본어투의 말들을 조사하여
이를 대신할 적절한 우리말을 찾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국어 순화의 시작이
된다. 해방 전후의 국어 순화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일본어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으며 이는 온 국민이 함께 동참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의 국어 순화 사업은 1948년 문교부 편수국 주관 아래
간행된 『우리말 도로 찾기』라는 소책자에 잘 나타나 있다. 이때에는 다음과
같은 일본어 어휘들이 우리 고유어로 주로 순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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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또(素人) → 맹문이, 날무지
분빠이(分配) → 누누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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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962년에 문교부는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를 설치하여 일반 용어를
비롯하여 언어, 문학, 법률 제도, 경제 금융, 예술, 과학 기술 분야의 한자어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도록 하였다. 또한 정부에서는 한글 전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1967년에는 이와
같은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하는 정부의 국어 순화 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각
전문 분야 용어를 고유어로 바꾼 『쉬운말 사전』을 펴내기도 하였다. 이 시기부터는
외래어투의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는 시도가 비로소 시작되었으나 일본어투의 말과
어려운 한자어를 순화하는 것을 여전히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쉬운말
사전』에 제시된 국어 순화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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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gasoline) → 휘발유
가터(garter) → 양말대님
개더스커트(gather skirt) → 주름치마
니힐리즘(nihilism) → 허무주의
다큐멘터리(documentary) → 기록 영화
레이디(lady) → 숙녀, 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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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한글 전용이 국어 순화의 중심 과제가 되었다.
1970년부터 정부에서는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정부 문서와 민원서류를
모두 한글로 사용하도록 하고 언론과 출판계에 한글 전용을 권장하도록 하였다.
1976년에는 문교부에서 설립한 ‘국어 순화 운동 협의회’를 비롯하여 민간
협의회와 연구회 등 많은 민간 국어 순화 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국어 순화의 범위가 생활 용어, 언론 용어, 학술 용어,
법률 용어, 건축 용어, 스포츠 용어 등으로 확대 되었다. 또한 ‘국어 심의회’라는
국어 심의 기구가 만들어져 국어 순화 사업을 담당하여 꾸려나갔으며 『국어 순화
자료』(1977)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국어 순화 자료』(1977)에
포함된 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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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nick name) → 별명
디스카운트(discount) → 에누리, 할인
라이벌(rival) → 경쟁자, 적수
밸런스(balance) → 균형
스코어(score) → (득)점수, 기록
스폰서(sponsor) → 광고주, 후원자
슬리퍼(slipper) → 실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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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84년에는 국립 국어 연구소가 설립되어 국어 순화 업무와 국어
정책 전반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으며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의 개정을 지원하였고 넘쳐나는 서양 외래어 표현을
순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국어 정책이 문교부에서 문화부로 이관되어 실행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 국립 국어 연구소를 국립 국어 연구원으로 확대 개편하여
국어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를 실시하고 합리적인 어문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최근 2004년도에 국립 국어 연구원은 ‘국립 국어원’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0년대에도 국어 순화 사업은 여러 분야에서 실시되었다. 70년대와
마찬가지로 특히 서양 외래어투의 용어를 순화하는데 중점을 두어서 생활, 미술,
전산기, 패션 디자인, 언론, 전기 전자, 금융 경제, 정보 통신, 운동 경기
등의 40개 분야에서 25,000 여 단어를 심의하여 순화 용어를 정하여 공고하거나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그 내용의 예를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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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외래어>
개런티(guarantee) → 출연료
리허설(rehearsal) → 예행 연습
멜로디(melody) → 가락
세미나(seminar) → 연구회, 발표회, 토론회
<언론 외래어>
가이드북(guidebook) → 안내서, 안내 책자
니치마켓(nitche market) → 틈새시장
다운로드(download) → 내려받기
북마크(boolmark) → 바로찾기
셔틀버스(shuttle bus) → 순환 버스
이슈(issue) → 쟁점, 논점, 관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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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남한의 국어 순화 운동은 초기에는 일본어투의 말을 고쳐나갔고
점차 남한의 언어에 많이 침투한 서양 외래어를 순화시켜 나가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이라고 할 만큼 가까워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의 접촉은 피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세계화’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접촉을
통해 많은 외국어와 외래어를 많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구촌이라는 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말을 풍부히 한다는 이점이 있으나 외래어와
외국어의 범람으로 인해 민족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 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이것은 남한의 국어 순화 정책이 비강제성의 문제이 동시에 국어
순화 정책이 실제 남한의 언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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