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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외국인의 한글 연구
 
조선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 조선의 한글을 도입해 자국의 문맹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중국인이 있었다. 바로 조선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에서 파견된 원세개(袁世凱)이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에 주목했다. 중화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후 원세개는 서민들이 한자를 깨우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한글을 가르치자고 제안했다. 당시 국운이 기울어버린 나라의 글을 사용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한자의 본토에 한글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목적으로 조선에 들어와 한글을 접한 서양인들이 있었다. 바로 동양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벽안의 선교사들이었다. 존 로스는 1872년 한국과 만주에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상해에 도착했다. 1877년 한국인과 함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 누가복음전셔’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로스는 소리나는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로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한글에 감탄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 정부의 모든 공문서는 여전히 한문을 사용하고 있었고 드물게 부녀자와 백성을 위한 한글 병기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한글로 성서를 번역하는 작업은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체 등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초기에 선교사들은 한글을 전도의 한 방편으로만 생각했지만 한글의 과학적인 우수성을 발견하고 사전을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서구의 어문학적 방법으로 한글이 연구되기 시작했고 다시 그를 바탕으로 주시경, 김윤경, 최현배 등 대표적인 한글학자가 탄생했다.
 
언어학자의 한글 연구
국제 학계가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1960년 미국 하바드 대학의 교과서로 출판된 라이샤워(E. O. Reischauer)와 페어뱅크(J. K. Fairbank)의 공저 ‘East Asia: The Great Tradition’의 제10장은 한국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라이샤워는 15세기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논하면서 한글이 오늘날 사용되는 문자 체계 중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로부터 4년 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포스(Frits Vos) 교수는 미국에서 열린 중국, 일본, 한국의 언어와 문자에 관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문자: 이두와 한글’에서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했다고 감탄했다. 한글에 대한 이러한 예찬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시카고 대학의 맥콜리(J. D. McCawley)가 1966년 미국 언어학회지 Language에 실은 서평이었다. 맥콜리는 동양 3국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논문 모음집에 대한 평을 하는 가운데 포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면서, 한글이 조음 음성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알파벳이며 소리의 음성적 특징을 시각화하는 데 있어 우수함을 인정했다. 이후 각종 언어학개론서의 문자론에서 한글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 리스 대학의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인류가 사용해온 각종 문자체계를 분류해 기술하면서 한글은 기본적으로 알파벳 문자이지만 다른 알파벳 문자와 한 부류로 묶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한글은 ‘ㄷ-ㅌ-ㄸ’처럼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거나 같은 글자를 반복함으로써 음소의 자질을 체계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고 이러한 특징은 다른 문자체계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샘슨은 한글을 따로 ‘자질체계(feature system)’ 문자로 분류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사세(Werner Sasse) 교수는 2002년 한국의 안정희 교수와 함께 ‘월인천강지곡’ 1권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해설을 달아 출간했다. 독일인 최초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은 삿세 교수는 ‘서양이 20세기에 들어서 완성한 음운이론을 세종대왕은 그보다 5세기나 앞서 체계화했고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극찬했다. 그는 세종대왕을 스승처럼 여겨 한국 방문 때마다 대왕릉을 참배하고 명함의 한쪽 면을 한글로 적었는가 하면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본 경험에 비추어 한글이 얼마나 배우기 쉬운 글자인지 역설하기도 했다.
일본인으로서 국제한국어교육학회의 부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한글과 한국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노학자도 있다. 레이타구 대학의 우메다(Hiroyuki Umeda) 교수는 1967년 처음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 땅을 밟은 후 줄곧 한국과 한글에 빠져 ‘한국어의 음성학적 연구’, ‘NHK 한글 입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우메다 교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 문자이며 로마자보다 진일보한 자질문자로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자체계라고 말했다.
미국의 맥콜리 교수는 매해 한글날이면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국에서조차 사라질 뻔한 한글날을 10년 넘어 지켜 온 미국인 교수가 또 있다. 메릴랜드 대학교의 램지(R. Ramsey) 교수는 한국어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한글 붓글씨를 써서 전시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서양의 알파벳이 수백년 동안 여러 민족을 거쳐서 변형 개량되어 온 것인 데 반해 한글은 발명된 것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나아가 그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눈 것은 음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계 최고의 알파벳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비언어학자의 한글 연구
과학사가이면서 여행가, 그리고 역사다큐멘터리 작가로도 활동중인 ‘존맨’은 서양 문자의 기원과 세계 주요 언어 자모의 연원을 밝힌 저서 ‘알파 베타(ALPHA BETA)’에서 한글에 대해 격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존맨은 한글이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알파벳의 대표적 전형이라고 기술했다. 나아가 알파벳이 발달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적고 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체계적임을 명시한 비언어학자가 또 있었다. 1994년 6월 ‘디스커버 15권 6호’에는 한 지리학자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체계를 갖춘 문자인지 조목조목 따져 놓은 논문 <Writing Right>가 실렸다. 필자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 글자가 한 눈에 구별되며 모음은 점과 수직선, 수평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자음은 조음 위치와 조음 방법을 정확히 본딴 기하학적 기호로 이루어진다. 이들 자음과 모음은 사각의 공간 안에 잘 조합되어 한 음절을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28개의 글자만 기억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서 한글이 전문가가 아닌 한 임금의 의지로 창제되었다는 데 감탄하고 있다.
우리에게 ‘대지’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펄벅도 구한말에서 1945년까지의 한국을 무대로 한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의 서문에서 한글에 대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한글이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자 체계이지만 한글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언어 음성이라도 표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라며 극찬했다.
1970년대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 사랑에 빠져 한글의 우수성을 외치는 사람도 있다. 미국 교육행정관 홀트(Danial Holt)는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에게 필독서가 되어 있는 <속성한국어>와 한국어 속담집을 집필했다. 그는 한글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글자로 명확하고 간결하게 음성을 표기할 수 있으며 한국인이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2006년 10월 9일, 560돌 한글날은 국경일로 승격되었다. 이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외국인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장인 데이비드 맥켄 교수는 훈장을 받은 소감으로 외국인이라도 한글을 익혀 사용할 수 있으면 세종대왕의 백성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머물던 시절 접한 김소월의 시에 반해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한국시를 영역해 내고 있다. 굳이 한글을 언어학적이고 문자사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보지 않더라도 한글로 쓰여진 것을 사랑으로 대한다면 모두 한 울타리에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에 감탄하고 나아가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청소년들은 무엇 때문에 기념해야 되는 날인지도 모르는 국가 기념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대적 관점에서 본 한글’에서 외국인 학자들의 한글 연구 업적에 대해 소개한 후 한 가지 아쉬움을 표현했다. 60년대에 들어서 구미학자들이 한글의 독창성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학자들의 오랜 숙원이 풀렸으나 외국에서 한글의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는 사이 우리 학자의 연구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 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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