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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한글 - 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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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언간 학봉 언간 한글 편지를 통해서 본 옛사람의 한글 표현
 
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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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시대의 '언문(諺文)'과 '언간(諺簡)'
 
조선시대 에 씌어진 한글 편지는 흔히 ‘언간(諺簡)’으로 불린다. 이는 당시의 한글이 ‘문자(文字)’, ‘진서(眞書)’ 등으로 지칭된 한문(漢文)과 대비되어 ‘언문(諺文)’으로 불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종(世宗) 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로 우리 국어는 전면적인 표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실제 사용 범위는 퍽 한정되어 종래의 한문을 대신하기보다는 한문 서적의 언해(諺解)나 한자음(漢字音) 정리 등 한문을 보완하는 역할에 그쳤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당시의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언문(諺文)’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언문’으로 작성된 문서가 정당한 문서로 인정되지 않은 데서 보듯이 ‘언문’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이 극히 제한되었다. 1894년 고종(高宗)이 ‘法律勅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법률과 칙령은 국문을 기본으로 하되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혼용하거나 한다]’이라는 칙령(勅令)을 내리기까지 한글은 조선 시대 내내 ‘국문(國文)’으로서의 공식성(公式性)을 인정받지 못한 채 ‘언문’의 지위에 머물렀던 것이다.

‘언문’의 실용 범위에 제약이 있었던 현실은 바로 ‘언간’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약은 무엇보다 언간을 주고받은 사람의 성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16세기 중반 이래로 숱한 언간이 현전하지만 남성 간에 주고받은 언간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 간에는 한문 서간이 오간 때문이지만, 남성이 공적인 영역을 독점했던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언문’이 공식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과 상통한다. 결국 조선시대에는 언간의 발신자나 수신자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여성이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용자의 성별(性別) 특징으로 인하여 종래 ‘언간’은 ‘내간(內簡)’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이 단순히 부녀자(婦女子)만을 상대로 하거나 부녀자끼리만 주고받은 편지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른 시기의 언간에 해당하는 16, 17세기의 것만 보더라도 수신자는 왕이나 사대부를 비롯하여 한글 해독 능력이 있는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계층의 남성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 서간이 사대부 계층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언간은 특정 계층에 관계 없이 남녀 모두의 공유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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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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