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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한글을 종이에 쓴 것만은 아니다.
돌에 쓴 한글, 기왓장에 쓴 한글, 장독이나
항아리 표면에 쓴 한글, 나무판에 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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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필사의 재료가 다양하였던 것이다. 특히 버선본이나
옷에 쓴 한글도 재미 있는 생활사 자료의 하나이다.
옷에 문자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불상의
복장(腹藏) 유물에서
나온다. 불상은 철이나 금동, 나무, 진흙 등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재료로 만든 불상은 하나의 물질적 조형일 뿐이다.
이렇게 만든 불상에 만다라, 다리니 등 각종 불경과 다섯
가지 보배와 다섯 종류의 곡식, 다섯 종류의 향, 다섯
가지의 약초와 다섯 가지의 길상초 등 여러 가지 영험
있는 물건을 정해진 의식(儀式)에 따라 불상의 몸 속
공간 각 부위에 넣는다.
불상을 만들고 각종 복장물을 넣은 의례가 《조상경》(造像經)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정해진 의례에 따라 넣은 물건 이외에도 《조상경》에 실려
있지 않은 물건도 불복장 유물에 들어간다. 의복이나 주머니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런 물건에는 불복장 의례에 참여하여
그 옷을 넣은 발원자의 이름을 묵서로 적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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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불상을 조성하는 불사(佛事)에 참여하여 깨끗하고 질 좋은 옷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본인과 가족의 소원성취를 기원할 때 그들의 이름과 발원문을
옷에다가 쓴 것이다. 이런 발원문은 한문이나 한자로 쓰인 것이 많지만 드물게는
한글로 쓰기도 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 바로 불복장의 의복에 한글로 쓴 발원문이다. 다음 그림이
그 실물이다.
이 옷은 대구에 소재하였던 (구) 건들바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지금은 이름을
바꾼 한국무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한글 문장을 판독하여
보이면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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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독문> 한두망의 연이 갑진
권시 병오 년 동참
무병 댱슈 부귀 손 만당
급뎨여 일품지 여
지이다
댱의 나
지 닷 권
황 겯 보텬노이다
<현대어 번역>
한두망의 연이 갑진(甲辰生)
권씨 병오생(權氏 丙午生) 백년 동참(百年 同參)
무병 장수(無病 長壽) 부귀(富貴) 자손 만당(子孫 滿堂)
급제(及第)하여 일품(一品)까지 하게 되기를 축원하나이다.
장의(長衣) 한 벌
백지(白紙) 다섯 권
황색실(黃絲) 한 묶음으로 하늘에 아뢰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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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두망 연이 갑진’에서 ‘한두망’은 마을 이름이며, ‘연이’는 사람 이름이다.
뒤에 나오는 권씨와 백년동참을 한 것으로 보아 ‘연이’는 어떤 남성의 아명(兒名)으로
보인다. 갑진년에 태어난 연이와 병오년에 태어난 권씨가 백년동참을 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백년동참은 ‘백년해로’와 같은 뜻이다. 연이라는 남성과 권씨가
백년해로 하는 혼인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이 혼인을 할 때에 한두망의 인근
사찰에서 행한 불사(佛事)에 참여하여 이 옷을 부처님께 바치면서 소원 성취를
축원하였다. 이 불사는 불상의 조성이었으니 불상 안에 안치하는 각종 불경과
만다라
오곡과 오보배 등을 넣으면서 두 사람이 평생 소원을 옷에 적어 넣은
것이다.
이들 부부가 축원한 내용은 무엇인가. 무병(無病), 장수(長壽), 부귀(富貴),
자손만당(子孫滿堂), 과거급제(科擧及第)가 축원한 내용이다. 인생 만사의 모든
복이 이 다섯 가지에 다 포함되어 있다. 너무 많은 복을 기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원 내용이 크다.
이들이 불사에 참여하면서 공양한 물건은 어떤 것들인가. 바로 이 발원문을 쓴
장의(長衣)
한 벌과 백지(白紙) 다섯 권 그리고 황색실(黃絲) 한 묶음이다.
옷과 종이와 실이다. 이 물건들을 모두 같이 이 불사(佛事)를 위해 바치고
부처님 몸에 안치시켰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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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식 전문가인 안동대 이은주 교수는 이 옷은 남자 옷이며,
옆이 트인 홑 포 종류인데
직령이나
중치막,
도포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홑 도포는 등 뒤 한판이라는것이 있는데 U자형 어깨바대가
있는 것이 도포와 약간 다르다고 한다. 옆트임에 무언가 붙어서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아서 중치막과도 약간 차이가 있다.
직령일 가능성이 크지만 직령이라고 하기에는 무의 처리가 자연스럽지
않다. 이 옷을 장의라고 했다고 하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남자의
장의는 ‘긴 옷’이고 여자의 장의는 머리부터 둘러쓰는 것이어서 양자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옷의 전체 모습으로 보아 이 옷을 만든 연대
즉 위 발원문에 나오는 ‘갑진’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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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이 ‘갑진’은 1604년 혹은 1664년 둘
중의 하나일 터인데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1604년 갑진년에 태어난 남성과
1606년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이 혼인하면서 이 발원문을 써서 불상 조성에
바친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두 남녀가 혼인하면서 신성한 불상 조성 의례에 참여하고 그들의 평생 소원을
빈 내용이 위 발원문이다. 이 부부의 소원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옷에 적힌 한글 발원문 내용은 오늘날을 사는 부부에게도 여전히 동일한 희망
사항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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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 (경북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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