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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과 한글

음식조리서 중 음식 디미방
 
음식조리서 중 음식 디미방
한글 음식조리서로 본 여성의 문자 생활
 
조선시대 여성의 한글 사용은 거의 대부분 일상생활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여성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날의 식생활뿐 아니라 가정 생활에서 여성의 중요한 책무

였던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을 수행하는 데도 음식 조리는 필수적이었다. 그리하여 행세하는 양반 가문에서 특징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집안 여성들의 커다란 자부심이었고 자랑거리였다. 이런 까닭으로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한글 음식조리서가 일찍부터 저술되어 널리 퍼졌다. 17세기 후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나온 음식조리서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제목 저자 연대 소장처
음식디미방 안동 장씨 1670년경 경북대학교
주방문 하생원? 1600년대 말엽 추정 규장각
음식보 미상 1700년대 초엽? 황혜성( 마이크로필름 )
술만드는법 미상 1700년대? 고려대학교
온주법 미상 1700년대 후기? 김시우 소장
규곤요람 미상 1795년 고려대학교
규합총서 빙허각 이씨 1809년  
규합총서 (정양완 역주) 1975년대 초엽 고려대학교 신암문고
주방 미상 1800년대 초엽? 이씨 소장
역잡록 미상 1830년대?  
정일당잡식 미상 1856년?  
음식책 단양댁? 1838년경~1898년경?  
음식방문 미상 1800년대 중엽? 동국대학교
윤씨음식법(찬법) 미상 1854년? 윤서석 소장
김승지댁 미상 1860년 황혜성 사본
술빚는 법 미상 1800년대 말엽?  
이씨음식법 미상 1800년대 말기? 이씨 소장
시의전서 미상 1800년대 말엽? 홍정 여사 소장
 
이외에도 20세기 초에 들어가면 신활자로 인쇄한 음식조리서가 여러 종류 간행되었다. 위 책은 《규합총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필사본이다. 그리고 이 책들의 상당수가 여성에 의해 직접 저술되었다. 규장각 소장의 《주방문》은 그 필체가 남자의 글씨이지만 여성이 먼저 저술한 것을 글씨 잘 쓰는 남성에게 정서를 부탁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음식조리법을 조선시대 양반 남성이 그렇게 잘 알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의 책들은 모두 여성들이 애용한 것이 틀림없다. 집안에 음식조리법 책을 두고 틈틈이 익혀 좋은 음식으로 가족과 손님을 먹이려고 노력한 결과 이 책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들 중 가장 먼저 저술되고 그 가치고 남다른 것은 《음식디미방》이다. 조선시대의 한글 음식조리서로 가장 연대가 빠른 것이 바로 《음식디미방》인 것이다. 이 책은 경북 북부의 안동과 영양 일대에서 살았던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張氏, 1598~1680)가 말년에 직접 저술한 음식조리서이다. 이 책은 한국의 음식사 이해와 조선 시대의 음식 문화를 연구하는데 그 어떤 자료보다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총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그 이전까지 한문으로 된 중국 서적 《농산집요》(農産輯要), 《산거사요》(山居四要) 등에 음식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수광은 1614년(광해군 6년) 이수광(李수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서 일부 음식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1611년에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음식 관련서를 저술하였다. 허균이 바닷가에 귀양가서 거친 음식만을 먹게 되자 가슴이 메어 견딜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그리워하며 이전에 먹어 보았던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면서 이 책을 지었다 한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도살장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이다. 거친 바닷가에서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생각하며 도살장 문을 바라보면서 크게 씹는 흉내나 내어 본다는 뜻이 담겨 있는 제목이다.

이런 한문 음식 관련 서적이 단편적으로 나오다가 드디어 1670년 경 장씨 부인에 의해 광범위하면서도 일정한 체계를 갖춘 전문 음식조리서 《음식디미방》이 저술되었다. 이 책은 장씨 부인의 친정인 예천의 맛질마을과 장씨가 살았던 영양의 두들마을 등 경상도 북부 지역의 음식 문화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앞 뒤 표지 2장을 포함하여 전체가 30장으로 된 필사본으로 장씨 부인이 직접 쓴 친필본이라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장씨 부인이 직접 쓴 서명(署名)이 없다는 이유로 장씨 부인의 저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장씨 부인의 아들인 종가(宗家)에 온전히 보존되면서 오랫 동안 소중히 간직되어 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의심은 쉽게 해소된다.

특히 이 책의 끝 장에 기록된 필사기(筆寫記)의 내용과 장씨 부인의 생애가 잘 연결되며, 책의 상태와 외형적 특징 및 그 속에 담긴 우리말은 17세기의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음식디미방에 저술자의 서명을 쓰지 않은 것은 이 책을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라, 집안에 간직해 두고 집안의 부녀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 사람들이 보는 책에 굳이 글쓴이의 성명을 밝혀 적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덧붙여 조선 시대 때는 여성들이 책을 저술하여 남기는 일이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일이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음식디미방》의 끝에 다음과 같은 필사기가 적혀 있다.
이 을 이리 눈 어두온 간신히 써시니 이  아라 이로 시고 식들은 각각 벗겨 가오 이  가뎌 갈 각을안 심 말며 부 샹치 말게 간쇼야 수이 러 리다 말라.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 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아라.)
 

장씨 부인이 고령의 나이에 눈이 어두워 글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수 이 책을 지은 의도가 윗글에 담겨 있다. “어두운 눈으로 간신히 이 책을 쓴 뜻을 잘 알아 책에 쓰인 대로 시행하고, 딸 자식들은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말고 필요하면 베껴 가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이 상하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있다. 장씨 부인의 이 당부가 후손들에 의해 그대로 시행되어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이 책이 전해져 학술적 가치를 빛내고 있으니, 후손을 위한 장씨 부인의 배려와 선조(先祖)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지켜온 후손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서로 수응(酬鷹)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이 필사기는 권말에 붙어 있기는 하나 글의 성격으로 보아 짤막한 서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장씨 부인의 유훈대로 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껴 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양반가의 조리법이 널리 전파되었을 것이다. 《음식디미방》과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자료로 추정되는 《주방문》(규장각 소장)이라는 책과 《음식디미방》을 비교해 보면 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두 책을 비교해 보면 20개의 조리 항목이 공통적이다. 《음식디미방》에는 총 146개항의 조리법, 《주방문》에는 60개항의 조리법이 실려 있다. 20개가 일치하니 《주방문》의 3할이 일치하는 셈이다. 이런 일치는 일정한 영향 관계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음식조리서에는 음식 관련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지식을 수록한 것이 있다. 간본인 《규합총서》에는 양조법은 물론 염색법도 있고 심지어 노비 다스리는 방법도 수록하고 있다. 그밖에도 바느질, 점괘, 금기, 아이 보는 일, 빨래하는 일 등 생활상식과 관련된 내용도 들어 있다. 음식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이 집안일을 하기에 필요한 상식을 같이 다루었던 것이다. 어떤 책에는 조리 방법을 설명한 뒤 가사(歌辭)를 실은 것이 있다. 술과 음식에 가사(歌辭)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주방문》과 《술빚는법》 두 가지가 있다. 《주방문》은 상사별곡(相思別曲), 춘면곡(春眠曲), 시주별곡(詩酒別曲), 천주가(天酒歌) 등의 풍류가사(風流歌辭)와 몇 수의 한시(漢詩)가 적혀 있다. 또한 《술빚는법》에는 맨 끝부분에 ‘목난가’라는 가사가 실려 있다. 생활상식도 소개하고 있는 것은 《온주법》,《규곤요람》(고려대), 《규합총서》(고려대), 《부인필지》 등이 있다. 다양한 생활 상식을 소개하여 여성의 가사 운영에 도움을 주려 한 것이다.

집필자 백두현 (경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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