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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아시아의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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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였던 중국은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이 문자를 매개로 문화를 이식하였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양상을 문자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대체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한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자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에
속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이 된다. 이들 주변국들은 중국에서 만든
한자를 빌어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것을 변개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 부류는 중국의 한자와 전혀 무관한 다른 문자를 빌어와 독자적인 문자
생활을 한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민족은 위구르, 몽고, 티벳 등이다. 위구르
종족은 아라비아 문자를 받아들여 변개하여 사용하고, 몽고와 티벳에서도 아라비아
계열 혹은 인도 계열의 문자에서 유래하는 문자를 받아 들여 변개하여 사용하였다.
또 한 부류는 중국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흩어져 살다가 민족이 결집하여
나라를 설립하고, 그것과 동시에 자국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문자를 만든 민족들이다.
이러한 민족들에는 거란, 여진, 서하 등이 있다. 이들 종족이 만든 문자는
한자에 기초를 두었지만, 기존의 한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문자의 수용 여부라는 차원 외에 문자를 수용하여 운영하는 방식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 부류는 한자의 모양을 변개하지 하지 않고 그대로 빌어 자국 언어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이두가 이러한 방식이다. 다른 한
부류는 한자의 획의 일부분을 택하여 자국의 음절이나 음소를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문자는 한국의 구결과 일본의 문자이다. 마지막 부류는 한자의 일부분을
사용하되 자국의 단어를 표기하기 위해 그것들을 겹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마지막 부류는 글자의 모양이 대단히 복잡해지는데, 그러한 이유 등등으로 인하여
모두 소멸하게 된다. 여기에서 소개에는 문자는 모두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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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거란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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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문자는 거란족이 만들어 사용하던 문자이다. 거란족은 중국 고대 북방
민족의 하나로 서력 기원 907년에 요나라를 건국하여 중국의 북방을 지배하다가
1125년에 여진족이 건국한 금나라에 의해 세력이 축소되고, 1218년 몽고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거란 문자는 요의 건국과 함께 거란 종족에 의해 사용되다가
요의 멸망과 함께 소멸한 문자이다.
거란어에 대한 자료가 희귀하여 그 대강을 알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비추어 거란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하고, 몽골어족과 가까운
언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란의 역사책인 요사(遼史)에 의하면 거란 문자에는 두 종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국 직후인 서기 920년에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문자를
만들어 반포하였는데, 이를 거란대문자라 한다. 그리고 그 후에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는데 거란대문자와 같이 사용하였는데 이를 거란소문자라고 한다. 이들
문자의 외형은 한자와 흡사하다. 필획이나 서사 격식도 한문과 동일하다. 그런데
두 종류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데에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밀접히 관련될
듯하다. 즉 거란족이 국가를 건국한 후 민족적인 자존심 등으로 한자에 기초하여
한자와 유사하지만 자국의 언어를 고려하여 문자를 만들고(거란대문자), 한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에 접했던 표음문자인 위굴 문자의 기능에
영향을 받아 표음문자를(거란소문자) 다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 문자의 창제는 이후에 서하족과 여진족이 각각 서하문자와 여진 문자의 제작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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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그림은 거란 문자가 새겨진 구리 거울인데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글자의 모양이 한자와 유사한 듯하지만 한자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 문자를 만들 방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발견된 거란 문자의 자료도 아직 해독되지 않은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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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진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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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문자는 여진족이 만들어 사용하던 문자로 한자와 거란 문자를 본따서
만들었는데, 이에도 두 종류 즉 여진 대자와 여진 소자가 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역사책인 ‘금사’에 의하면 금나라 태조의 명에 의해 완안 희윤이 거란
문자와 한자를 본따서 1119년에 여진 문자를 창제하게 하였는데 이를 여진
대자라고 한다. 그 후 1138년에 희종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쓰게 했는데
이것을 여진소자라고 한다.
여진어는 알타이 어족의 일파인 퉁구스 계통의 언어로 추정된다. 이 언어를 사용하던
여진족은 한국의 역사서에 ‘숙신’, ‘말갈’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민족의
후예일 것으로 추정되고, 후에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의 선조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진 문자에 의해 기록된 여진어는 여진족이 금나라(서력 기원 1115년 -
1234년)를 건국해서 사용하던 당시의 언어로 고대 여진어로 지칭된다. 중국
명나라 때의 여진어가 현대 만주어와 가까워서 쉽게 그 계열이 연결될 수 있는데
반해, 금나라 때의 여진어는 쉽게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대 구분하는 것이다.
이 문자 역시 금나라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데, 아직 해독되지 않는 것이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란 문자와 흡사하다. 즉 표의 문자가 원래의 단어의
어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문법적인 기능을 표기하기 위해 표음 문자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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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어와 여진 문자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왼편에 있는
‘화이역어’ 중의
‘여진관역어’이다.
왼편의 자료에서 보듯이 오른쪽에 여진 문자로 여진어를 표기하고,
이에 해당되는 중국어를 중국 문자로 그 왼쪽에 조금 큰 글씨로 쓴
후, 다시 그 왼쪽에 여진어의 발음과 같거나 유사하게 한자로 표기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진어와 여진문자를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 그 실체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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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자는 금나라의 멸망 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그것은 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던 종족 즉 만주족이 청대에 이르러, 중국의 한자와 전혀 그 계통을
달리하는 몽고 문자를 개량하여 새로이 만주 문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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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서하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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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 문자는 중국의 서북 지역에 살던 서하족이 만들어 사용하던 문자이다.
서하족은 티벳 종족의 일원인 탕그트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하는 당 나라
말기에 부흥하기 시작하여 1038년에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라 칭한 이래 1227년
몽고에 멸망할 때까지 중국의 서북 지방을 점유했던 종족이다. 서하 문자는 1036년에
거란 문자의 제자법을 배워 서하인이 제정한 문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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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은 중국어와 서하어를 대조하여 한문과
서하문으로 기록해 놓은 것인데, 이러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서하문의
해독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가장 오른쪽은 서하어의 발음을 한문으로 써 놓은 것이고, 그 바로
왼쪽은 서하어를 서하 문자로 써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중국어를 한자로 써 놓은 것이고, 제일 왼쪽은 중국어를 서하 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서하문의 문자 모양에서 보듯이, 거란 문자나 여진 문자와 유사하게
제자 되었는데, 그 만드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자 역시 서하국의 멸망 후에는 사용되지 않고 사멸해 버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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