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6. 음소
문자의 출현과 확산 |
|
 |
 |
6.0. 개요 |
|
 |
| 문자사에서 이미 존재하던 문자를 수용하여 변개하면서, 완전한 자모 음소문자까지
발전하게 되는 경로는 크게 나누어 대략 세 가지이다. 하나는 셈어를 사용하던
페니키아 인의 문자 계통을 이어 받아 그리스 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하나는
역시 셈 어를 사용하던 아람 인의 문자 계통을 이어 받아 아라비아 인, 몽고
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도에서는 브라프미 문자라는 음소 문자가 만들어지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페니키아 문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페니키아의 문자체계를 차용한 그리스 인들은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여 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체계를 완성한다. 즉 자음중심의 음절(음소)문자인
페니키아 문자를 수용하여 변개하되, 한 단계 더 진보한 문자 체계를 새로이
완성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그리스 어와 페니키아 어의 사이에 존재하는
음운체계의 상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페니키아의 문자를 받아들인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어와 그리스 어에 공통적인 자음일 경우에는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되
자음만을 표기하기 위한 기호로 사용하고, 희랍어에는 존재하지 않은 자음을
표기하던 페니키아 문자는 그리스 어의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문자 숫자의 부족으로) 페니키아 문자로 표기할 수 없는 모음을
위해서는 새로운 문자를 추가함으로써 완전한 음소문자의 단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문자는 로마인을 경유하여 서유럽의 각지로 전파하게 되고,
이 지역에 살던 제 민족들(예를 들어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델란드
등의 종족들)은 각자의 언어 실정을 감안하여 약간의 변개를 거쳐 지금의
문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 문자는 슬라브 제어를 사용하고
있는 동유럽에 전파되어 시릴(Cyrillic) 알파벳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러시아, 동유럽의 일부, 옛 소련 지역의 자치 공화국, 몽고 등에서 그
지역의 언어에 맞게 약간씩 변개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 |
한편, 고대 이집트 문자를 받아 들인 또 다른 셈 어를 말하는 민족의 하나인
아람(Aram) 인은 독자적인 자음 중심 음절(음소)문자체계를 만들고, 이
문자는 Hebrew 인, Arabia 인에게 전달되어 Hebrew 문자로,
Arabia 문자로 발전하게 되고, 시리아, 중앙 아시아 등으로 전파되어 여기에서
사용하는 문자의 기원이 된다.. 또한 아람 문자는 Iran 인을 통해 고대
터키인인 위그르 인에게 전달되어 위그르 문자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몽고 인이
차용하여, 몽고 문자를 만들게 되고, 이 후 몽고인과 만주인이 사용하는 음소
문자가 된다.
인도에서 음소 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 들인 그리스 인들이
한 행위와 비슷하다. 페니키아 문자는 자음 중심 문자였기 때문에 모음 자모가
필요하였고, 셈어에는 없는 자음 자모도 더 만들 필요가 있었다. 즉 인도에서는
페니키아 문자에 모음 자로 및 새로운 자음 자모를 추가하여 음소 문자를 완성하는
것이다. |
| |
 |
6.1. 페니키아 문자의 후예와 확산 |
|
|
| 6.1.1. 그리스 알파벳의 정립 |
|
기원전 1,000년 경에 그리스인들은 에게 해의 정치적 주도권자였던 페니키아
인이 사용했던 페니키아 문자를 접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페니키아
자음 문자를 받아들여 음소문자를 완성하게 된다. 페니키아 자음 문자를 받아들여
이들은 자국어의 자음를 표기하는 데 사용하고, 그리스 어에 대응되는 음이 없는
기호는 모음의 표기에 사용하는 관행을 만들어 이것을 모음 표기 문자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실질적으로 완성된 음소문자가 지구상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초기의 그리스 음소문자는 여러 방언에 맞추어 여러 가지의 변종이 생겼으나,
기원전 403년경에 아테네 인들이 공식 문서에 이오니아 알파벳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이것이 표준적인 알파벳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현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음소 문자를 지칭하는 ‘알파벳’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3세기 경부터 문헌상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문자의 배열상 처음에 나오는 두 글자의 당시 이름 ‘알파’와
‘베타’를 조합한 것이다. |
| |
| 6.1.2. 그리스 알파벳의 확산 |
|
[로마 알파벳]
기원전 8세기 경에 그리스 문자가 로마에 전파된다. 로마에 전파된 그리스 알파벳
역시 각 지방에서 여러 가지 변종이 생겼는데, 그 중 에트루리아 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문자를 에트루리아 문자라 한다. 26개의 문자로 구성되었던 에트루리아
문자는 이탈리아 각지에 그 세력을 넓히게 되자 이 문자의 변종이 이탈리아 각지에서
다시 만들어지게 된다. 이 중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자료를 남기고 있는 로마(라틴)
알파벳이 이탈리아 전 지역에 전파되어 로마제국의 공식 문자가 되고, 서유럽의
제 국가에 전파된다. 그리하여 이 문자는 로마 교회의 권위와 서구 사회의 식민지
확산에 힘입어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구상의 곳곳에서 사용되는
문자가 된다. |
| |
[곱트,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문자]
기원전 1,000년대에 소아시아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의 변형된 알파벳이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후 정복지에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자를 보급하였다.
당시의 이집트 어를 곱트 어라고 하였는데, 이 언어는 변형된 그리스 알파벳으로
표기되었으며 이를 곱트 문자라고 한다. 이것은 32개의 자음 및 모음 기호로
구성되었다. 7세기 이슬람의 이집트 정복으로 아라비아어가 이집트에 들어 왔으나
곱트 문자는 약 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5세기 초에는 성 메스롭이 아르메니아 인을 위해 그리스 알파벳을 기초로 하여
약 36개의 문자로 구성된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었다. 한편 성 메스롭은 알바인을
위해 그루지야 알파벳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
| |
[슬라브계 문자]
서기 3세기에 로마제국이 분열된 후 9세기 모라비아에 슬라브 공국이 수립된다.
이 왕국은 로마교회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것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이때 사용된 문자는 당시 번역에 종사하였던 콘스탄틴(후에 ‘키릴’이라
불림)과 메토디우스가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제작한 글레골 문자와 키릴 문자였다.
키릴 문자는 여러번의 수정과 개량을 거쳐 러시아 알파벳이 되었고, 구소련 지역의
여러 민족도 이를 차용하여 자국어의 표기에 맞게 개량하여 사용하고 있다. |
| |
[룬 문자]
북유럽의 스칸디나반도에서 사용된 문자를 룬 문자라 한다. 이 문자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고대 게르만 룬 알파벳으로 서기 200년에서 750년
사이에 사용되었는데, 5세기와 6세기 경에는 앵글로 색슨 인들이 이 문자를
잉글랜드로 가져가 사용하였다. 다른 하나는 노르딕 룬 알파벳으로 바이킹의 팽창기인
서기 800년에서 1050년 사이에 유럽의 각 지방에 전파되었다. 이 문자는
잉글랜드와 스칸디나 반도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13세기 이후 그 세력이 감쇠되었다. |
| |
[오검 문자]
오검 문자는 잉글랜드 제도에서 켈트 어를 사용하던 종족들이 사용하던 문자이다.
이 문자의 배열 원리와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 |
 |
6.2. 아람 문자의 후예와 확산 |
|
|
| 셈계 상인이나 그 후예들은 그들이 사용하던 문자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변방까지 전파시켜 다양한 문자가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들이 전파시킨
문자는 대체로 아람문자에 기원을 두는 것이다. |
| |
| 6.2.1. 이란과 중앙아시아의 셈계 문자와 확산 |
 |
[소그드 문자]
소그드 인은 중앙 아시아의 소그디니아 지방에 거주하던 종족이다. 이들이 사용한
문자를 소그드 문자라 칭하는데, 이 문자는 중앙 아시아에서 발달한 문자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그드어는 이란계 언어로서, 그들이 사용한 문자는 아람
문자에 기원을 둔 문자를 변형시켜 독자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자음
문자의 성격을 띈다. 17개의 단자음을 표시하는 문자가 기본이고, 모음을 표기하는
문자가 있기는 하지만 두 개 이상의 음가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 문자는
위그르 인에게 전해져 위그르 문자를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아라비아 문자가 소그드 문자를 대신하게 되고, 그 후 문자는 소멸하였다. |
| |
[위구르 문자]
위그르 인은 본래 몽고 고원에 살던 터키 계의 유목민인데, 후에 중앙 아시아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후기 소그드 문자를 받아들여 8세기 경 혹은 그 이전에
위구르 문자를 창안하였다. 이것은 17세기 후반까지 사용되다가 소멸하였는데
그 자리는 아라비아 문자가 차지하였다.
위구르 문자는 몽고인에게 전래되어, 13세기 초에는 칭기스 칸에 의해 몽고인의
문자로 채택되어 몽고의 지배권역에서 외교적인 문자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
| |
[몽고 문자]
지금의 내몽고와 외몽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몽고인이 사용하던 문자에는 계통을
달리 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칭기스칸이 원 제국을 건설한 뒤 문자 없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위구르 문자를 변형시켜 만든 몽고 문자이다. 다른 하나는
위구르 문자를 변형시킨 몽고 문자가 몽고어의 기록에 적합하지 않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쿠빌라이 칸 시절 티벳의 고승 파스파에게 명하여 만든 파스파 문자이다.
이 두 문자는 북셈계 계통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만, 전자는 시리아 문자의
계보를 잇는 것이고, 후자는 인도 문자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몽고인들은 초기에는 위구르 문자를 받아 들여 사용하다가, 1272년에는 티베트의
인장 문자를 변형시켜 몽고어의 음소를 표기하기 위해 창안된 파스파 문자가 쿠빌라이
칸에 의해 도입되고, 1310년에는 위구르 문자를 몽고어의 언어적 특성에 맞게
변형시킨 칼라카 문자로 바뀌었다.
몽고 문자에서 칼무크 문자와 만주 문자가 발달하게 된다.
파스파 문자가 몽고어의 음소를 표기하기에는 적합했지만 글을 쓰기에는 부적합한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구르식 몽고 문자가 새로운 서체를 개발시키면서
근대 몽고 문자로 자리잡았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몽고 문자도 이 문자이다. |
| |
|
|
| |
[만주 문자]
중국의 동북, 한반도의 북부를 만주라 칭하고, 이 지역에 살던 종족을 만주족이라
하는데 여진족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진족은 금 왕조를 건립하였을 당시(서력
기원 1115년 -1234년) 여진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금 왕조의
멸망과 함께 퇴조하였다. 청 나라를 세운 만조족은 1599년 누르하치가 신하들에게
명하여 새로운 만주 문자를 만들게 하였다. 그 문자의 모델은 위구르식 몽고
문자였다. |
| |
 |
6.3. 인도 문자와 전파 |
|
 |
고대 인도 문명을 일으켰던 종족들이 사용하던 고대 인도 문자는 고대 인도
문명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그 후 대략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셈계 상인들에
의해 북셈계 문자가 전래되어 브라프미 문자 등 다양한 문자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쇼카 왕 시대 이후 브라프미 문자가 인도의 대부분 지역에
확산 된 후, 이 문자에 원조를 둔 다양한 문자들이 다시 발달하게 된다. 동남아시아에는
이 문자들 중 일부가 전래되어 그들의 언어에 맞게 변형되어 사용된다.
광대한 인도의 여러 지역에 문자가 전파되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인도를 통일하여 지배하였던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의
위업에 기인한다. 아쇼카 왕은 인도를 통일한 후 칙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
칙령을 당시에 존재하던 카로슈티 문자와 브라프미 문자로 작성하는 것이다. 이
중 대부분의 것이 브라프미 문자로 기록되어 이 문자가 인도의 전역에 전파된다.
인도의 영역이 넓은 것만큼 브라프미 문자로부터 파생된 문자도 많고, 그것들의
분포도 다양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에 따라 두 개 내지는 세 개의 문자가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독립해 있지만 본래 인도의 영역이었던 파키스탄에서는
아라비아 문자, 뱅글라데시에서는 벵갈 문자, 스리랑카에서는 신하라 문자를 공식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인도 문자의 다양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
| |
| 6.3.1. 인도 문자 |
 |
[카로슈티 문자]
인도 북서부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기원전 3세기 경부터 기원후 3세기 정도까지
사용된 것으로 인도에 여러 문자 중 영향력 있는 문자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자의 영향력은 아쇼카 왕의 비문이 서북인도에서는 이 문자로 작성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전역에 브라프미 문자가 확산되어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이 문자는 소멸하고 만다. |
| |
[브라프미 문자]
아쇼카 왕의 비문 중 대부분을 기록하였던 이 문자는 인도의 전역에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도 전파되어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대략 200여개의
다양한 문자로 발달하였다. 그리고 현대 인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문자들도 이
문자에서 기원을 두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문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인도의 학자들 중에서는 고대
인도 문명을 일으켰던 당시의 문자와 관련시키기도 하고, 학자에 따라서는 남셈
문자, 그리스 알파벳, 드라비다 문자 형태 등에 연관시키기도 한다. 현재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북셈 문자 중 페니키아 문자에서 그 기원을 추정한
것이다.
이 문자는 기원전 3세기 경에 이미 인도계 언어의 음성을 완전하게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인도에 전래된 문자에 당시의 인도에 구전되던 음성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접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자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음을 표기하는 문자는 음절적이었다. 자음 표기 문자는 자음을 표기할
뿐만 아니라 인도의 기본 모음 중 하나인 a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2) 모음 표기 문자는 단독이나 어두에 사용될 때 독자적인 형태를 가지며,
자음과 결합할 때에는 자음 기호의 앞뒤 혹은 위아래에 보조적으로 부가되었다.
(3) 문자의 순서는 음성적인 특징을 고려하여 배열되었다. 모음 표기 문자가
우선하는데, 그 순서는 단모음, 장모음, 이중모음을 표기하는 문자의 순으로
배열되었다. 그 다음에 자음이 배열된다. 자음은 조음 위치가 가장 안쪽인
연구개음부터
시작하여, 가장 바깥쪽인
순음의
순으로 배열된다. 그 후
반모음,
치찰음,
후음
등이 배열된다. (이러한 음성학적인 지식은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
성운학의
바탕이 된다. 그리고 중국의 성운학은 조선에전래되어 훈민정음
창제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브라프미 문자는 기원 후 1-2세기 경부터 지방별로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데,
대체로 4세기경에 남방계와 북방계로 분리되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중 북방계는 굽타 왕조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굽타 문자라 부른다. 굽타
문자는 여섯 갈래로 분류하는데, (1) 싯다마트리카체 (2) 나가리체 (3)
샤라다 문자 (4) 원벵갈체 (5) 초기 네파리체 (6) 애로 헤드체 등이
그것이다. 이중 싯다마트리카체는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되어 실담 문자라
불리고, 나가리체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발전하여 현대 인도 연방의 공용 문자가
되었다. |
| |
[실담 문자]
굽타 문자에서 변화한 싯다마트리카체가 중국에 들어가 悉曇, 悉談, 七曇 등으로
전사되다가 실담으로 고정되어 실담 문자라 불린다. <법륭사 패엽>이라고
불리는 <반야심경>이 불교와 함께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문자는 자음 문자와 모음 문자로 구분되는데, 자음 문자는 기본적으로 모음
‘ㅏ’를 가지고 있다. ‘ㅏ’ 이외의 모음이 자음과 결합한 음절을 나타낼 경우에는
자음 문자에 모음 기호를 붙여 사용하였다. 이 문자의 자모표는 다음과 같다. |
| |
|
|
| |
[데바나가리 문자]
굽타 문자에서 변화한 싯다마트리카체로부터 나가리체가 생겨나서 점차 확산되어
싯다마트리카체를 대신하게 된다. 이 문자가 남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도에
확산되었고, 문자 이름도 데바나가리 문자(‘데바’는 ‘신’을 의미)라 칭해졌다.
18세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인쇄물이 이 문자로 씌여졌고, 그 결과 이 문자가
현대 인도 연방의 공용 문자로 되어 있다.
데바나가리 문자는 자음 문자 34개, 모음 문자 14개로 되어 있다. 자음
문자는 단독으로 자음만을 표기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모음 ‘ㅏ’를 가진 음절의
음가를 가진다. 그래서 자음과 ‘ㅏ’ 모음 이외의 모음이 결합한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서는 자음 문자와 모음 음가를 가진 문자를 결합한다. 구체적인 자모표는
다음과 같다. |
| |
|
|
| |
[그란타 문자]
남인도에서 아리아 계 인도인이 사용하던 문자이다. 5세기 이후부터 이 문자로
쓰여진 비문이 발견되는데, 이 문자를 사용하던 파라바 왕국이 7-8세기에 융성하면서
해상으로도 진출하게 되어 동남아시아에 전해졌다. 동남 아시아의 고대 문자는
대부분 이 문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재 남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
| |
[타밀 문자]
타밀 문자는 드라비다 어족의 하나인 타밀 어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문자이다.
그 계통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데, 대체로 브라프미 문자에서 4-5세기
경 분리되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9세기경부터 마드라스 이남과
북부 실론에서 드라비다 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고, 이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14-15세기 경에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로 이주하여, 현재 버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와 케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
| |
| 6.3.2. 티벳 문자와 파스파 문자 |
 |
[티벳 문자]
티벳은 서장이라고도 불리는 지역으로 현재 중국의 서방 지역에 속해 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종족의 이름도 티벳이고,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의 이름도
역시 티벳이다. 이들의 언어는 버마 어족과 함께 티벳 버마 어족을 구성한다.
이 종족이 사용하는 문자는 굽타 문자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문자에
의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763년의 <포타라칙비>이다 |
| |
|
|
| 티벳 문자는 현재도 티벳 종족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 문자는 인근 종족에
전해져 파스파 문자와 레프차 문자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 |
[파스파 문자]
파스파 문자는 원리 쿠빌라이 칸의 명으로 만들어진 몽고제국의 문자로서, 몽고국자,
몽고신자라고도 불린다. 이 문자는 티벳 문자를 기초로 해서 몽고어에 적합하도록
고안된 자모 문자이다. 1269년에 공포되어 원 나라의 공식 문서에 사용되었는데,
원나라의 멸망과 함께 이 문자도 소멸하였다. 자모표와 음가는 다음과 같다. |
| |
|
|
| |
| 6.3.2. 동남아시아의 문자 |
 |
| 동남아시아는 그 지역적 특성 때문에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기서
사용되는 문자 역시 인도 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 |
[크메르 문자]
동남아시아의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는 종족을 크메르 인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몬 족과 합쳐 몬 크메로 어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종족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는데, 인도의 그란타 문자를 차용하여 특유한
형태의 문자를 만들었다. 현대의 캄보디아 문자는 자음 자모 33개, 모음 기호
20개로 구성되어 있다. |
| |
[버마 문자]
버마의 고대사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 현재의 버마 족이 버마의 남쪽에 세력을
펼치고 있던 몬족을 평정하여 버마를 통일하는 것은 11세기 중엽이다. 이때
버마 족은 몬 족이 사용하던 문자(인도의 그란타 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임)를
채용하여 원을 주축으로 한 독특한 문자를 만들었다. 현대의 버마 문자는 이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문자 이름을 챠 론이라고 한다. 문자는 32개의 자음자와
11개의 모음 기호로 되어 있다. |
| |
|
|
| |
[타이 문자]
타이 어족에 속하는 민족과 언어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학자에 따라서 방언
내지는 어군을 분류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나타날 정도이다. 현재 타이 족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는 자음자모 44개와 모음기호 32개(모음자 28개, 성조부호 4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읽는 방식이 복잡하다. 이 문자는 18세기 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버마 문자에서 발달했으리라는 추정과 크메르 문자에 기초해서 창작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