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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화면 > 한글의 탄생과 역사 > 문자 생활사 > 개화기 이후 |
개화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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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전 편찬과 문자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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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까지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전, 운서 등이 식자층의 문자 생활을
위한 소중한 한어발음 사전 및 조선 한자어 발음 사전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언중들의 문자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척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향유층은 갑오경장
이전까지 대체로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계몽기의 문자 생활사를
거치면서 당시의 선각자들은 구시대의 자전이 아니라 우리말 사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주시경은 그의 <국문론>에서 ‘사전’의 출판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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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션말노 문법을 졍밀게 들어셔 남녀간에 글을
볼 에도 그 글의 을 분명이 알아보고 지을 에도
법식에 고 남이 알아보기에 문리와 쉽고 경계가 게
짓도록 쳐야 겟고 국문으로 옥편을 드러랴
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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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전 편찬을 주장한 주시경이 그 사업에 관여하게 된 것은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최남선이 세운 조선광문회에서의 일이다. 최남선은 이 조선광문회의
세 표치(標幟)를 수사(修史), 입학(立學), 이언(理言)으로 보았는데, 이 이언의 방안이 사전 편찬과
문법 정리였다. 시대가 아직 과도기였기 때문에 이 때 주시경은 대역사전인 「新字典」을
김두봉과 편찬하였다. 아울러 이 조선광문회에서 추진한 것이 1911년부터 편찬한
「말모이」였다. 「말모이」는 사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시경은 그의 제자들인
권덕규, 이규영, 김두봉과 함께 편찬의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실제로 출간되지는
못했다. 이 「말모이」는 고유어 및 외래어에 전문어를 포함시킨 언어 사전의
성격을 지니는 최초의 순수한 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출간되지는
못했고 그 일부 원고가 전하고 있으며, 국어 사전의 효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과 노력으로 출간코자 했던 사전은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일제는 총독부 학무국 주관으로 「朝鮮語辭典」(1920)을 간행했다.
이것은 비록 주석을 일어로 번역하였으나 최초의 본격적인 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11년부터 현은(玄檃)을 비롯한 네 사람의 조선인의 손으로 편찬케 했으나
오구라 신뻬이(小倉進平)의 품사 분류와 주석 심사와 수정, 그리고 1918~1919년
원고 정정을 통해서 간행되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아래에서 초기의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것인데 맞춤법은 대체로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을 따르고 있다. 당시는 일본어가
국어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조선어는 일본 통치하에 있는 조선의 말로 이 말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방언이나 다름없는 언어이다. 따라서 일종의 방언사전,
한일대역사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사전이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진정한 우리의 사전이 빛을 발하게 된다. 심의린의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25)이 그것이다. 이 사전은 경성의 주식회사 이문당에서
출판한 것으로 1925년 10월 20일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1928년 2월에
재판이 발행되었으며 1930년 4월 10일에 3판이 발행되었다. 심의린의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은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는 언어 사전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학습
사전이다. 심의린의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은 <자서>, <범례>,
<목록>, <본문>, <부록> 등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록>에는 <보통학교 한자 자전>
이 붙어 있다.
이 사전은 당시 조선인이 주도적으로 편찬하여 최초로 인쇄된 조선어 사전인 동시에
조선인이 단행본으로 출판한 최초의 조선어 교육용 학습 사전이자, 조선어 단일어
사전이다. 이 사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이 인쇄 및 출판된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사전이 발굴됨으로써 국어사전 편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의 연구자들의
주체적 노력과 의지에 따라 인쇄, 출간된 것은 실용 사전으로서의 학습용 사전이었던
셈이다.
인쇄, 출판된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알려졌던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은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던 문세영이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1920)을
대본으로 하여 편찬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어 사전의 성격을 지니는 바, 순전한
조선말과 이두, 한문으로 된 말 기타 외국에서 들어온 말 및 학습에 필요한
용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전에서는 사건명, 지명, 인명 등을 표제항으로
올리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전은 인쇄된 최초의 순수 국어사전이긴 하지만,
최초의 사전은 아닌 셈이다.
이후에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마춤법통일안>, <사정한조선어표준어모음>,
그리고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을 차례로 공표해 놓고 1930년부터
1942년까지 최초의 대사전으로 기록될 「조선어대사전」의 원고를 탈고하고 일부
조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해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고 당시
학자들이 투옥되고 일이 와해되는 바람에 해방이 되기 전에 그 빛을 보지 못했다.
1942년 1월 잡지 <한글>10-1에서는 독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어대사전」은 그 권수가 3권에서 4권이 될 것이며, 그 출판 시기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고 밝힌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해방이 된 후 1948년에
제1권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고, 1957년에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간행을
보게 되었다.
이렇듯 문자 생활사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 우리의 언어 생활이라는 것은
표기법의 제정과 개정, 그리고 논쟁이 점철된 역사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국어사전을 갖고자 갈망했던 어문 운동사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문자
생활의 출발은 자주적이지 못한 외세의 필요와 통치를 위한 것이었고, 그 정책에
우리 국어학자들이 때로는 결합하고 불가피하게 협조했으나, 그 후 그 어문 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 및 실천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문자 생활사의 선각자적 역할을
다해 왔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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