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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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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두
   
3.1.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 문장을 표기한 차자표기 중 하나이다.
   
임신서기석 이두는 주로 실용문이나 공식문(公式文)에 쓰였다. 이두는 일반적으로 공식 문서 등에 사용되었지만 한문을 번역할 때 사용한 경우도 있다.

차자표기 자료 중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나 『양잠경험촬요(養蠶經驗撮要)』 등은 한문을 이두로 번역한 것이다. 이두의 명칭이나 표기도 문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두를 나타낸 명칭으로는 ‘이도(吏道)(『대명률직해』), 이두(吏讀)(최만리 상소문), 이토(吏吐) (『이문잡례(吏文雜例)』, 이두(吏頭) (『유서필지』), 이두(里讀)( 『재물보』), 이도(吏刀), 이투(吏套)’ 등이 있다. 이 외에 ‘이서(吏書) (『제왕운기』), 이찰(吏札) (『동국여지승람』), 이어(吏語)’ 등도 이두를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이두의 표기에 보이는 ‘도(道), 두(讀), 토(吐), 두(頭), 도(刀), 투(套)’는 그 어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말의 어떤 말을 글자만 다르게 표기한 차자표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구결의 토(吐)와 같은 어원으로 ‘구두(句讀)’의 두(讀)가 변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향찰(鄕札)과 이두와 구결은 문장을 표기한 차자표기로 차자표기 전체 체제에서 보면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향찰은 우리말 문장을 전면적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에 비해 구결문은 한문의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두문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두문은 주로 실용적인 문장으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이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두와 음독구결(音讀口訣)은 큰 차이를 보이는바, 토(吐) 부분을 삭제해서 완전한 한문 문장이면 음독구결이고, 토 부분을 삭제하여도 한문 문장이 아닌 것이 이두문(吏讀文)이다.

이두는 사용된 시기와 이두문의 특징에 따라 제1단계의 이두문과 제2단계의 이두문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1단계 이두문의 특징은 제2단계 이두문과는 달리 토 표기가 나타나지 않으며, 어순에 있어서 우리말 어순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순에서 우리말 어순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제1단계의 이두 또는 이두문의 초기 형태는 삼국시대 자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광개토대왕비문>과 4종의 고구려 성벽(城壁) 석각명(石刻銘) 그리고 <중원 고구려비> 등은 고구려의 자료로 초기 이두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자료이다. 부분적으로 우리말 어순이 반영되어 있다. 이 문체는 한문에 우리말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가미된 속한문(俗漢文) 또는 변체한문(變體漢文)의 성격을 띤다.
 
냉수리비 신라의 <영일냉수리신라비명(迎日冷水里新羅碑銘)>(6세기 전반),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무술오작비명(戊戌塢作碑銘)>(578년), <남산신성비명(南山新城碑銘)> 등은 한자를 우리말 어순으로 완전하게 배열한 초기 이두문이다. ‘節’(“이 때에”)과 ‘之’(종결어미, ‘-다’) 등이 이두적인 용법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8세기에 들어와서 이두문에 토 표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2단계 이두문이 등장한 것이다.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명>(720년), <무진사종명>(745년), <백지묵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755년), <영태2년명 석조비로자나불조상명>(766년) 등이 제2단계의 이두문이다. 이 중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는 토 표기 즉, 우리말 조사나 어미 등이 표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우리말 문장이다. 이 자료에는 말음첨기법도 보인다. 또 토 표기에 한자의 생획자(省劃字, 또는 약체자)가 쓰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두문이 다양하게 쓰였다.
 
전(前) 시대 이두 자료보다 더 다양한 토 표기들이 나타나는 것도 고려 시대 이두문의 특징이다. 고려시대의 이두 자료는 약 60여 종이 전하는데 앞으로도 더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만 몇을 들면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이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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