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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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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차자표기로 된 고려의 가요 중에 경기체가(景幾體歌)가 있다.
   
고려 고종 때에 당대의 학자들이 지었다고 하는 <한림별곡(翰林別曲)>과 안축(安軸. 1282~1348)이 지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이 그것이다.

한자어들을 우리말의 순서로 열거하고 끝에 ‘……景ㅅ幾如何/景ㅅ긔 엇더닛고’를 붙이는 형식의 노래다. 향찰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자료로 새로이 주목해야 할 것은 ‘ (記. 또는 記釋)’ 또는 ‘석의(釋義)’이다. 『균여전』에서는 균여가 남긴 기석을 10종 열거하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 전하는 것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 <석화엄지귀장원통기(釋華嚴旨歸章圓通記)>, <화엄경삼보장원통기(華嚴經三寶章圓通記)>, <석화엄교분기원통초(釋華嚴敎分記圓通?)> 등 5종이다. 이들은 한문으로 되어 있으나 그 발기(跋記)를 보면 모두 방언 또는 신라의 고어가 섞여 있었던 것인데 후대에 그 방언을 삭제하고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찌기 양재연 선생은 이것이 곧 향찰이라고 하였다. 이 기석은 균여의 강의를 그 제자들이 집록(集錄)한 것으로 원문에 대한 풀이와 주해가 동시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가운데는 한문구도 없을 수 없으나 우리말의 표현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조선시대 자료로 현재 남아 전하는 시경석의(詩經釋義) 등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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