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면 > 한글의 탄생과 역사 > 문자 생활사 > 훈민정음 창제 이전

훈민정음 창제 이전

1 2 3 4 5 6 7 8 9
5.3. 음독구결은 한문의 순서대로 음독하되 한문의 구두(句讀)에 해당하는 곳에 토를 넣어 읽는 구결이다.
   

음독구결은 13세기 중엽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최근까지도 한문 학습에서 사용되고 있다. 음독구결에서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한문의 구절 사이에 들어가는 우리말, 토(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음독구결이다.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야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 이것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 중 첫 부분인데 음독구결문이다. 한문 구절 사이에 있는 ‘이, 야, 로, ’ 등을 구결토라고 한다. 한문에 구결토를 다는 것을 ‘구결을 단다, 토를 단다, 현토(懸吐)한다, 현결(縣訣)한다’라고 한다.

음독구결을 표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석독구결과 같이 한자의 생획자 등으로 만든 구결자로 기입하는 것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구결과 토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조선 초기의 자료에서부터 보인다. 세종실록에서 “무릇 책을 읽을 때 우리말로써 구절을 끊는 것을 세속에서 토라고 한다”(세종실록 10년 윤4월 기해, 1428년)라고 한 것과, “임금이 구결을 정하다”(원각경언해 서문)라고 한 기록 등이 그것이다. 15세기 언해서들에서 구결을 입겿으로 번역하는 것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음독구결은 한문 공부를 하는 데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다. 이것은 대체로 조선시대의 한문 독법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의 음독구결은 다음과 같은 많은 자료가 알려져 있다.

 
음독구결
 
이 외에도 많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음독구결 자료들이 있다. 앞으로 자료를 더 많이 발굴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불경언해의 한글 구결은 종래부터 내려오던 구결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불가(佛家)의 표준적인 구결이 되어 이 이후의 불경구결은 비록 차자로 기입한 것이라도 이 구결을 이기(移記)한 것이 많다. 따라서 15세기 후반의 불가구결(佛家口訣)은 간경도감 계통의 구결과 대조하여야 기록 당시의 바른 언어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고려말의 범망경(梵網經) 구결 자료에 쓰인 음독구결의 용례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범망경 음독구결
 
이 문장은 『범망경보살계(梵網經菩薩戒)』 46ab면에 있는 것으로 각각 “이것이 불행처이니 성주의 칭찬하고 찬탄한 바이니라. 내가(구마라습삼장) 이미 순서를 조차 다 말했으며, 한량없는 복덕을 쌓아 중생에게 돌려줌으로써 베푸니 일체지를 함께 지향하기를 바란다”와 “원컨대 이 법을 듣는 자는 불도를 빨리 능히(얻어서) 이룰지어다(이루기를 바란다)”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의 유가구결(儒家口訣)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기록상으로는 정몽주와 권근, 세조의 구결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이 없다. 실제로 고려시대 이전의 유가구결은 당시의 과거제도를 고려해 볼 때 많은 양이 존재했을 것이지만 현재 전하지 않고 있어 유감스럽다.

지금까지 발굴되어 연구된 구결 자료들에서 사용된 구결자를 보이면 다음 <도표 2>와 같다.
 
구결자
 
1 2 3 4 5 6 7 8 9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