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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생활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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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문자 생활은 사용한 문자를 기준으로 볼 때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한자 내지는 한문을 수용하여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둘은 한자를 수용하되 변용하여
사용한 것이고, 마지막은 우리의 고유한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시대별로 조금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대에 따라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시대별로 구분하여 우리 조상들의 문자 생활을 살펴 보기로 한다.
 
1. 훈민정음 창제 이전 - 한자의 혁신적 변용
고유한 문자를 가지지 못했던(혹은 가졌다 하더라도 상실해 버린) 한국인의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내지 2,500년 전쯤에, 인접해 있는 종족의 문자인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한자를 빌려서 사용하되, 그 한자가 가지고 있는 표음적 기능과 표의적 기능 중 어느 한 쪽만을 택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방법은 국어의 음절 ‘고’를 표기하기 위해 한자 ‘古’를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古’의 표의적 기능을 버리고, 한자의 문자 형태와 음을 빌려서 국어를 표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어의 형태소 ‘믈’을 표기하기 위해 한자 ‘水’를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한자 ‘水’의 음은 고려하지 않고, 한자의 문자 형태와 그 문자의 의미를 빌려서 국어를 표기하는 것이다.
 
1.1. <초기 차자 표기의 형식>
한자를 차용하여 국어를 표기하는 위의 두 가지 방식은 초기에는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조로 알려지고 있는 ‘赫居世王(혁거세왕)’의 경우 <삼국사기> 권1에서 주를 달기를 “개향언야 혹작불구내왕언광명이세야(蓋鄕言也 或作弗矩內王言光明理世也)”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光明理世(광명이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당시의 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赫(붉을 혁)’의 뜻을 빌려서 표기하거나 ‘弗(불)’의 음을 빌려 표기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명의 표기에서 “買忽一云水城(매홀일운수성)”라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매홀’과 같이 음을 빌려 표기하는 방법과 ‘수성’과 같이 훈[뜻]을 빌려 표기하는 방법을 혼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곧 ‘매’와 ‘홀’은 각각 우리말의 소리이고, 그 뜻은 각각 ‘물[水]’과 ‘성(城’)이라는 것이다.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이러한 방식 외에 문장을 기록하는 측면에서도 한자를 빌려 쓰되 우리말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문장 구조를 우리말 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된 문장 중에서 초기에 나타나는 것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並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末年七月二十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 서기석)
임신년육월십육일 이인병서기 천전서 금자삼년이후충도집지과실무서 약차사실 천대죄득서 약국불안대난세가용행서지 우별선신말년칠월이십이일 대서 시상서례전윤득서삼년(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並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末年七月二十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풀이 :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같이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삼년 이후에 충성된 도리를 지키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을 잃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받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큰 난세이면 가히 모름지기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 따로 먼저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시, 상서, 예(예기), 전(좌전)을 차례로 습득할 것을 맹세하였는데, 삼년으로 하였다.)

 
1.2. <초기 차자 표기의 의의와 발전>
초기의 차자 표기 중 고유명사의 표기는 한자가 가지고 있는 표의적 기능과 표음적 기능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여 사용하였으므로 <변용>이라고 할 수 있고, 문장의 표기는 한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므로 <수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기 즉 고유명사의 표기에 있어서 뜻을 빌려 표기하기도 하고 음을 빌려 표기하기도 하는 방식은 하나의 존재를 두 가지 이상의 형식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대단히 번잡스러운 면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문장의 표기에 있어서 구조 자체는 우리말 식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문법 형태소를 자의적으로 삽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미의 전달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게 된다.

또한 한국어와 중국어는 말소리와 문법 구성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더라도, 그 표기의 대상인 언어의 차이로 인하여 용법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한자는 고립어인 중국어의 특징을 반영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착어인 한국어를 표기하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한자를 차용한 우리의 조상들은 한자로써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의 하나는 한 단어를 표기함에 있어서 표기의 유형을 단일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어에 없는 문법 형태소를 표기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즉 국어 문장을 한자를 빌려서 표기하되 문장의 구조적 차이와 문법 형태소의 유무적 차이를 인식하고 한자를 국어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1.3. <향찰문>
중국어에서는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로 발음되고 이것이 하나의 형태소를 지칭하지만, 국어의 형태소는 하나 이상의 음절로 구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용된 글자 수와 국어의 형태소 사이에는 뚜렷한 형태상의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한자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미 선택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차자를 함에 있어서 좀더 정확하고 국어다운 표현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음을 빌려 표기하는 방식과 뜻을 빌려 표기하는 방식을 혼용하는 것에서, 하나의 단어를 표기함에 있어서 뜻을 나타내는 부분을 앞에 두고 음을 표기하는 부분을 뒤에 두는 방식으로 점차 정형화시키고, 문법 형태소를 보충하여 의미 전달을 명확하게 하고, 국어다운 문장이 되게 한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차자 표기는 국어 문장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게 되는데, 이의 발전 형태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실질적인 형태소까지 다양한 차자 표기법이 활용되는 것이고, 하나는 문법형태소나 이에 준하는 형태소에 한하여 차자표기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향찰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이두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향찰문의 예로 <제망매가(祭亡妹歌)>의 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一等隱 枝良 出古 去奴隱 處 毛冬乎丁(제망매가)
(해독 : 하 가지라 나고 가논 곧 모온뎌)
(현대어역 : 한 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원문과 해독을 비교하여, 뜻을 빌려 온 경우를 ‘훈’이라 하고, 음을 빌려 온 경우를 ‘음’으로 적어 보면, ‘훈+음+음, 훈+음, 훈+음+음, 훈, 음+음+음+음’의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부분적인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뜻을 나타내는 부분을 앞에 두고, 음을 나타내는 부분을 뒤따르게 하는 표기법으로 정형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음을 나타내는 부분은 ‘等(등)’과 ‘隱(은)’처럼 형태소나 단어의 뒷부분이거나, 독립된 형태소일 경우에는 ‘良(양)’이나 ‘古(고)’처럼 조사나 어미 등의 표기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향찰문에서는 한자의 음이나 뜻 중 하나만을 빌려 단음절인 국어의 형태소를 표기하거나, 한 형태소의 말음 음소를 표기하기 위해 ‘音(음), 乙(을), 尸(시), 叱(질)’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어문자인 한자를 차용하여 음절문자 식으로 사용하거나 음소문자 식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혁신적 변용’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1.4. <이두문>
향찰문과 기본적인 성격이 비슷한 것에 이두문이 있다. 향찰문이 운문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이두문이 산문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지만, 이두문이 실질형태소 부분에서 한자의 원 뜻과 음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향찰문과 초기의 이두문은 기본적인 성격에 있어서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두문의 예를 간단하게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蠶段 陽物是乎等用良 水氣乙 厭却 桑葉叱分 喫破爲遣 飯水不冬
(양잠경험 촬요)
修理爲乎矣失時爲在乙良苔三十齊 (대명률직해, 30:1b)
(이두부분 해독 : 修理오되 失時견을랑 苔 三十 齊
(현대어 풀이 : 수리하되, 때를 놓치면 몽둥이 30이다.)

이두문에서는 향찰문에서와 같은 말음첨가자를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실질형태소의 표기에서는 한자의 음과 뜻을 살려 표기하기 때문이다. 문법형태소를 표기하기 위해 한자를 사용한 방법은 음절 문자 식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두문 역시 ‘혁신적 변용’에 의해 표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 <구결문>
석독 구결문은 한문의 원문을 변개시키지 않고, 문법 단위의 끝에 본문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토를 달아 우리말로 새겨 읽은 일종의 변역체 문장이다. - <구역 인왕경(舊譯仁王經)>-의 첫 문장을 통해 석독 구결의 표기법을 우선 살펴 보기로 한다.

信行 具足 復 有 五道 一切衆生  復 有 他方 不 可. 量 衆

이 문장은 원문의 상태를 그대로 옮기되, 세로로 배열된 것을 가로로 배열하고, 본문의 왼쪽에 붙어 있는 구결은 위첨자로 표기하고, 본문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 토는 아래첨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 문장을 석독 구결의 독법에 따라1)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은 우리말 문장이 된다.

信行 具足 復 五道 一切 衆生 有 復 他方 量 可 不 衆 有 <舊仁 02:01-2>
(풀이 : 신행을(淸信行을) 구족하시며 또 五道의 모든 중생이 있으며 또한 他方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있으며)

여기에 나타나는 차자 중 앞에 나오는 몇 자만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는 ‘乙’을 간략하게 한 것으로 목적격 조사 ‘을/’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는 ‘爲’의 시작 부분에서 따온 것으로 동사 어간 ‘-’를 표기하는 것이고, 는 ‘示’의 머리 부분을 따온 것으로 ‘시’를 표기하기 위한 것이다. 는 ‘㫆’의 약체자로 ‘며’를 표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사용된 구결의 약체자는 대략 70 여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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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창원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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