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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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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맞춤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이른바 모아쓰기 방식이다. 즉 자모 하나씩을 일렬로 풀어 ‘ㄱㅏㅁ’이나 ‘ㅂㅓㄷㅡㄹ’처럼 표기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감’이나 ‘버들’처럼 음절(音節) 단위로 묶어 표기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 모아쓰기 방식은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부터 구상하였던 것으로, 오늘날 자음과 모음을 각각 초성(初聲)과 중성(中聲)이라 하고 받침을 종성(終聲)이라 불렀던 것도 모아쓰기를 전제로 한 이름들이고, 자음과 모음의 글자 모양을 완전히 다른 계열로 만들었던 것도 모아쓰기를 염두에 둔 조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ㅣ, ㅏ, ㅓ, ㅐ, ㅔ’처럼 ‘ㅣ’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것은 초성의 오른쪽에 쓰도록 하고 ‘ㅡ, ㅗ, ㅜ’처럼 ‘ㅡ’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글자 및 ‘ㆍ’는 초성의 아래쪽에 쓰도록 하였다.

모아쓰기 방식을 제외하고 우리 맞춤법은 계속 변화를 겪어 왔고 또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한글 맞춤법』과 같은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뚜렷한 경향은 있었으나 정연하게 통일된 맞춤법이 지켜진 일은 없었고 심지어는 한 문헌 안에서도 서로 다른 맞춤법이 혼용되는 수도 많았다.

초기 문헌들의 맞춤법 중 오늘날의 맞춤법과 비교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달랐던 점은 받침의 표기였다. 명사와 조사를 구분하여 ‘사이, 집으로’처럼 표기하지 않고 ‘사미, 지브로’처럼 받침을 내려 표기하였고, 용언의 경우도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여 ‘남으시니, 늙은’처럼 표기하지 않고 ‘나므시니, 늘근’처럼 받침을 내려 표기하였다. 그리고 받침에 ‘ㅈ, ㅊ, ㅋ, ㅌ, ㅍ, ㅎ’을 쓰지 않도록 하여 ‘낯, 닢, 빛나니, 높고’ 등을 ‘낫, 닙, 빗나니, 놉고’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른바 팔종성법(八終聲法)이라 하여 받침에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의 여덟 자만 쓰고 나머지는 이들 중의 어느 자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당시의 맞춤법은 소리나는 대로 적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는데 비록 후기로 오면서 조사와 어미 앞에서 받침을 올려 적는 이른바 분철(分綴) 표기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이 발음 위주의 맞춤법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일된 맞춤법이 없이 혼란을 겪는 문자 생활이 20세기 초기까지 계속되어 왔다. 한글이 계속 그 생명력을 이어오긴 하였으나 나라의 공문서며 중요한 저술들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한글로 영위되는 문자 생활의 비중이 그만큼 적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개화기(開化期)를 맞아 한글이 비로소 공문(公文)에도 쓰이게 되고 학교도 세우고 교과서도 만들면서 통일된 맞춤법이 없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1907년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를 설립하고 맞춤법 통일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와 협의를 하도록 하였다. 그 가운데 모든 자음을 받침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는 아주 혁신적인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맞춤법의 골격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맞춤법은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빛을 못 보았는데 그러나 그 내용은 나중 조선총독부에서 1930년에 공포한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과 조선어학회에서 만든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그대로 전수되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1933년 10월에 나라의 통일안으로 공포되었고 이로써 우리 맞춤법의 오랜 표류(漂流)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시대에 맞게 얼마간 손질하여 정부에서 1988년에 고시하여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 『한글 맞춤법』에 맞추어 새 한글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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