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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리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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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國文’출현

19세기 말엽 서구 열강과 수교를 맺고,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가 약화됨에 따라 독립과 자주 의식이 고취되면서 우리의 고유 문자는 국가의 문자로 그 지위가 격상된다. 즉 ‘언문’이 국가의 문자가 되면서 그 명칭이 ‘국문’(國文)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國文’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고종실록 기사부터 비로소 나타나 ‘언문’이 국가의 공용 문자로 자리매김 되었다.

훈민정음이 1443년 창제된 이후 450년 만에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갑오개혁 이후 정부 조직을 개혁하면서 학무아문(學務衙門) 내에 편집국을 설치하여 ‘국문철자’ 등에 관한 업무를 관장토록 하였다(고종 31년 1894년 6월 28일).

 
2.3. ‘한글’의 출현
‘한글’은 1913년 3월 23일에 창립한 조선언문회 창립총회의 전말을 기록한 《한글모 죽보기》의 “四二四六年 三月十三日(日曜)下牛一時 ···· 本會의 名稱을 ‘한글모’라 改稱하고····”(단기 4246년 3월 13일(일요일) 하오 1시 .... 본회의 명칭을 ‘한글모’라 개칭하고)에서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한글의 최고(最古) 사용 연대는 1913년 3월 23일이 된다.
그후 ‘한글’이라는 명칭은 《아이들보이》(1913.9)의 <한글풀이>란에 처음 실용화되었고, 1914년 4월에 조선어강습원의 이름을 바꾸어 ‘한글배곧’이라 부른 데서도 쓰였다. 주시경의 제자인 김두봉의 《조선말본》(1916)의 머리말에 ‘한글모임자 한샘’과 1916~19년에 엮어진 이규영의 《한글적새》와 《한글모 죽보기》에서 ‘한글’이 쓰인 것으로 보아, 주시경의 제자들이 이 말의 보급에 앞장섰던 것을 알 수 있다.

1927년에 《한글》이 창간되어 이 이름이 일반인의 의식에 오르게 되고 이 해의 기념일부터는 ‘한글날’로 고쳐 일컫게 되어, 한글의 운동이 자꾸 성대하여짐에 따라, 한글이란 이름도 더욱 널리 퍼지고 깊이 뿌리를 박아 일반 사회가 즐겨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 문자 명칭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글 명칭어는 시대별로 용어 사용에 일정한 특징과 경향성이 있으므로 시대별로 나누어 기술한다.

① 훈민정음 창제 시기: 훈민정음, 정음, 언문이 공존하였던 바 초기에 쓰인 ‘언문’은 비하적 의미를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② 16세기~19세기 말 : 언문이 주류이고 언자(諺字)도 부분적으로 쓰였다. 후자는 ‘글자’라는 뜻이 강하여 전자보다 더 좁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③ 19세기 말~20세기 초 : 개화기 이후 민족의식이 본격적으로 발로되면서 국문이 등장하였다.
④ 20세기 초~현대 : 일제 치하에서 ‘국문’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게 됨에 따라 ‘한글’이 만들어져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로 이어졌다. 한편 북한의 ‘조선말규범집’ 등에서는 ‘조선글’ 혹은 ‘조선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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