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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보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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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초기의 한글 학습 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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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절표와는 전혀 다른 한글 학습의 교재가 창제 초기부터 존재하였다. 해례본의
본문 예의가 그것이다. 원래 해례본 자체도 한글 학습의 교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한학자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깊은 이론으로 되어 있어
학습 교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대하여 해례본 본문의 예의는 세종이 창제한
한글 글자를 예시하고 그 사용에 대한 간단한 규정을 설명한 것이지만, 내용이
해례본 자체보다 훨씬 간단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글을 학습할
수 있는 교재로도 이용되었다.
1459년(세조 5)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권두에 그 전문(끝에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正齒音)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어 있다)이 언해되어
실린 것은 그러한 교재의 구실 때문이다. 새로 창제된 한글로 쓰여진 장편의
책을 널리 읽히도록 하려면, 먼저 그 한글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한글과 범자로 쓰여진 『진언집』을 간행하면서 언본과 한글의 반절표에 해당하는
범본(
실담장(悉曇章)이라고도
한다)을 첫머리에 실은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월인석보』에 실린 이 언해본 곧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학습의 교재이다.
언해본의 구결과 번역을 살펴보면 『월인석보』의 서문과는 다르고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서문과 일치하는 사실이 발견된다. 예컨대, ‘문(文)’의 주석과 번역이 언해본은
『석보상절』의 서문과 같이 ‘글왈’이나 『월인석보』 서문은 ‘글월’로 된 것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1447년의 『석보상절』 권두에 이미 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책에 실린
다라니
곧 진언의 표기에 『월인석보』의 다라니 표기와 같이 이미
치두음과 정치음이 사용되어 있다. 그에 관한 규정이 추가된 언해본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고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러한 추가를 정당화하는 근거일
수 있다. 오늘날 『석보상절』 권 1이 전하지 않아서 실린 실책을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편한 『월인석보』에서
석보상절서 와 함께 다시 옮겨 싣게 된 것이 권두의 언해본이라고 생각된다. 『석보상절』이
간행된 지 10여 년이 지났으나 한글의 보급이 잘된 편이 아니어서 『월인석보』를
읽히기 위하여는 여전히 한글 교재의 필요가 있었던 것도 다시 실은 이유의 하나가
되리라 생각된다. 해례본 본문의 예의나 그것을 번역한 언해본만으로도 한글은
완전히 학습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자를 알고서 예의나 언해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경우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비록 한글로 번역되었지만, 전혀 낯선 글자로 되어서
한자로 된 예의와 마찬가지로 읽고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의 어떤 표음문자도
그러한 규정으로 된 학습 교재는 없다. 더욱이 한자를 아는 사람에게도 그것이
효과적인 교재라 할 수 없다.
한글 자모의 음가를 『동국정운(東國正韻)』에 따른 한자음으로써 보인 것이 그
이유이다. 예컨대 ‘ㄲ, ㄸ, ㆆ’ 등의 음가를 ‘뀨(虯), 땀(覃), (挹)’ 등으로써 익히도록 한 것이 그러하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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