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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보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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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기의 한글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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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이후의 약 반세기, 곧 15세기 후반기의 한글 문헌은 상당한
양에 이른다. 1446년의 해례본을 비롯하여 1497년(연산 3)의 『신선태을자금단(神仙太乙紫金丹)』에
이르기까지 약 40부의 문헌이 현재 전하고 있다. 그 중에는 1부이면서 25권인
『월인석보』, 24권인 『석보상절』, 10권인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등도
있으므로 상당한 분량의 책이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으로 보면 가장 많은 것은 불교서(佛敎書)인데 전체 한글 문헌의 약 60%가
넘는다. 그밖에 어학서(語學書), 시가서(詩歌書), 유학서(儒學書), 의학서(醫學書)
등도 있다. 한편 간행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전하지 않는 책도 꽤 있다.
그 속에는 한자 학습의 입문서, 어학서, 교훈서 등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약
50년 사이에 여러 방면에 걸쳐 많은 한글문헌이 간행된 셈이다. 그러나 한글의
보급이 전국적으로 되었다고 속단하여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문헌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이들이 하나같이 모두 서울에서 편찬되어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금속활자로 간행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능엄경언해』, 『주역전의구결(周易傳義口訣)』,
『두시언해(杜詩諺解)』 등과 목판으로 간행된 해례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월인석보』,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 등은 중앙정부의 출판기관인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된 것이다.
목판으로 된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등 초기 불경언해의
한글 문헌 9부는 모두 중앙의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된 책이다.
간경도감에서 똑같이 왕명을 받아 간행한 불경의 한문본이 전주(全州), 나주(羅州), 상주(尙州),
진주(晉州)에서 간행된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15세기 말의 한글 문헌인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와 『시식권공(施食勸供)』도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에 따라 정교한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간경도감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교서관이거나
원각사(圓覺寺)와
같은 중앙의 사찰에서 이루어진 책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15세기에는 한글 문헌의 원간본은 1부도 지방에서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책으로는 그렇게 단정할 수밖에 없다.
이름만 알려진 책도 편찬의 기록으로 따져보아서 똑같이 추측된다. 현재 전하는
책에서 간기(刊記)로 확인된 지방판은 15세기 마지막 해에 비로소 나타난다.
그 최초의 책은 1500년(연산 6)에 경상도 합천(陜川)
봉서사(鳳栖寺)에서
간행된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이다. 판식과 판각, 인쇄가 중앙의
15세기 한글문헌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엉성한 책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이 중앙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것을
복각한 점이다.
다시 말하면 간경도감의 원간본을 해책(解冊)하여 뒤집어 새겨서 중간한 것이다.
지방에서 편찬된 한글 문헌의 원간본은 김안국(金安國)이 관찰사로 있으면서 1518년(중종
13)에 경상도에서 간행한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
『정속언해(正俗諺解)』 등이 가장 빠른 책이 아닌가 한다.
불교서인 『법집별행록언해(法集別行錄諺解)』도 1522년에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로 중앙의 한글 문헌을 복각한 책과 함께 새로 편찬된
여러 분야의 한글 문헌이 지방에서도 잇따라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 시대에도 한문으로 된 문헌은 중앙의 간본에 못지 않은
아주 훌륭한 지방판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15세기 말까지 한글의 보급이
지방에서 한글 문헌을 편찬하여 간행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다가 16세기에야 그것이
가능하도록 되었다고 추정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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