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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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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글이 겪은 여러 가지 변화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그때까지 서자 취급을 받아오던 한글로서 크게 환영할 만한 것들이었다.
첫째는 한글이 국어의 중심적인 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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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가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글’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훈민정음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표준 표기법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한글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한민족의 문자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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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글의
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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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한자를 제치고 국어의 중심적인 표기 문자로 태어나게 된 것은 개화기
실용주의 사상의 뒷받침이 컸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문자 자체에 사상 감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자를 떠난 우리의 사상 자체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문자는 단지 사상 감정을 담는 도구일 뿐이란 각성 속에서, 어려운 한자보다는
손쉽게 익혀서 활용할 수 있는 한글이 훨씬 나은 문자란 인식이 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글이 서구의 문자와 같은 소리글자란 점도 꽤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당시 정부의 개혁 정책이 이러한 흐름에 큰 힘이 되었다. 개화 정부는
1894, 1895년 칙령으로
‘언문식(諺文式)’을
공포하여 공문서를 한글
위주로 작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물론 이러한 정책을 세우는 데는 이미 많은
국민들이 한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 후기로 오면서 시조, 사설시조, 국문소설, 국문가사 등이 계속 창작되고
왕이나 대왕대비까지도 언간(諺簡)이나 한글
전교(傳敎)를
사용한 기록들을 보면,
국가적으로 한글을 중심 문자로 대접하지 않았을 뿐이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터전 위에 더해진 개화 정부의 한글 사용 정책은 한글의 위상이 빠르게
강화될 수 있게 하였다. 일제 하에서 잠시 기세가 눌렸던 한글은 광복과 더불어
그 자리를 되찾고, 이후 국가 위상의 상승과 더불어 국어의 중심적인 표기 문자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일제 시대에는 민족 의식 각성의 상징으로서 한글이 더욱 부각될 수 있었으며,
광복에 이은 한글 교육 활성화와 한글 사용의 확대는 우리나라를 문맹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낮은 국가가 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1989년부터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 공로상으로 수여하고 있는 「세종대왕상」은 세계에 한글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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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한신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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