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면 > 한글의 탄생과 역사 > 한글의 발전 > 현대의 한글

현대의 한글

1 2 3 4 5 6 7
2. 한글이란 이름
‘한글’이란 이름은 ‘훈민정음’을 대신하는 공식적인 이름이자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이라고 할 만하다. ‘정음’, ‘암클’, ‘아햇글’, ‘가걋글’, ‘반절’ 등과 ‘언문’, ‘언서’, ‘국서’, ‘국문’, ‘조선글’ 등 한글을 일컫는 이름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고유명사로서의 한글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거나 별칭 혹은 속명이라 할 만하다.

한글의 최초 이름은 ‘훈민정음’이었다. 그렇지만 이 ‘훈민정음’이란 이름은 세종 때나 쓰였을 뿐 그 이후에는 쓰였다고 할 만한 기록이 없다. ‘정음’은 이 훈민정음의 약칭인 듯한데, 이것도 정인지 서문에만 잠깐 나올 뿐이다.

다만 ‘정음청’이란 기관을 설치, 혁파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글의 이름으로 쓰인 것은 틀림없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듯하다. ‘암클’, ‘아햇글’, ‘가걋글’ 등은 또한 세간에서 일시적으로 쓰이거나 한글을 허투루 대하는 이름으로 쓰였고, 그것도 분명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글의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부에서 한글을 대신해서 손쉽게 부르거나 상스럽게 부를 때 쓰였던 별칭 혹은 속명이라 할 것이다. 한글의 이름으로 가장 흔하게 쓰였던 것은 ‘언문’이다. 그렇지만 이 이름도 역시 한글의 고유 이름이라기보다 한자 또는 진서(眞書)에 대한 ‘상스런 글자’의 뜻을 가진 일반 명사라 할 것이다.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실록, 세종25년 12월 30일)란 구절을 봐도 ‘언문’이 일반 명칭이란 것이 드러난다. 심지어는 일본의 ‘가나’를 ‘언문’이라고 한 기록(실록, 순조 9년 12월 2일)까지도 있음을 보면 ‘언문’을 한글의 이름이라 하기는 힘들다.

개화기에 한글의 이름으로 가장 흔히 쓰였던 것이 ‘국문’인데, 이것도 역시 진정한 고유 이름이라고 하기 어렵다. 국문은 뜻 그대로 ‘한 나라의 글자’를 뜻하는 일반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신문에서 ‘언문’과 ‘국문’을 번갈아 바꾸어 쓴 것이나, 당시의 많은 글들에서 어떤 나라의 글자건 그 나라에서 쓰는 글자를 ‘국문’이라고 한 것을 보면 ‘국문’이 한글의 고유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보면 ‘한글’은 ‘훈민정음’을 바로 계승한 우리 글자의 고유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곧 ‘훈민정음’이 우리의 ‘언문’이라고 한다면, ‘한글’은 우리의 ‘국문’이라 할 것이다. 한글은 그 뜻 자체로도 우리 국문의 이름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한글’의 ‘한’은 우리 한민족의 ‘한(韓)’이자, ‘크다, 많다’의 뜻으로 쓰였던 ‘하다’의 활용형으로서 ‘큰’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한글’은 ‘한민족의 글’, ‘큰 글’ 또는 비유적으로 ‘제일 좋은 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글자에 ‘한글’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주시경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주시경은 일찍부터 ‘한나라글, 한나라말, 한말’ 등의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배달말글 몯음’이나 ‘조선어 강습원’을 ‘한글모, 한글배곧’ 등으로 개명하기도 하고, 어린이 잡지 <아이들보이>(1913. 9)에 ‘한글풀이’란을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20년대 후반에 와서야 ‘한글’이란 이름이 일반화되었던 듯하다. 중앙 일간지가 ‘한글’이란 용어를 쓰는 데 대해 변명을 할 정도라면(동아일보, 1917년 10월 27일 사설), 그때까지도 대중화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 이름의 대중화에는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가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1911년 민간학술단체로 시작한 이 단체는 ‘한글’지(1917년 창간), ‘한글날’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한글’이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그 이름이 점점 세상에 퍼지게 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 2 3 4 5 6 7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