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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세종시대의 집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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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학사도
집현전은 조선 초기에 궁중에 설치한 학문 연구 기관이다. 조선왕조 건국 이래 표방해 온 유교주의 국가로서 갖추어
야 할 의례, 제도의 확립과 인재의 양성 및 문풍의 진작을 위해 1420년(세종 2)에 궁궐 안에 설치하였다.

학문 연구 기관으로서의 집현전은 제도적으로 도서의 간직과 이용, 학문 활동, 국왕의 자문에 대비하는 일 등을 맡아보았다. 또한 정치에 귀감이 되고 후세에 본이 될 각종 사서의 편찬과 주해 사업 등을 활발히 하였다.

집현전을 처음 설치할 때 직제는 영전사(정1품), 대제학(정2품), 제학(종3품), 부제학(정3품), 직제학(종3품), 직전(정4품), 응교(종4품), 교리(정5품), 부교리(종5품), 수찬(정6품), 부수찬(종6품), 박사(博士)(정7품), 저작(정8품), 정자(정9품)을 두었다.

이 집현전 제도는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서 한나라 이래 설치되어 있었으나 그 제도가 정비 된 것은 당나라 현종 때로서 이 때부터 학사를 두고 왕이나 세자 앞에서 경서를 강의하는 일인 시강(侍講), 왕에게 교서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인 지제고(知制誥), 장서, 사서, 수서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 삼국시대에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 명칭과 기능이 집현전제와 비슷한 백제의 박사, 신라의 상문사(詳文師), 통문박사(通文博士). 서서원 학사(瑞書院學士) 등이 그 것이다.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인종 때인데, 이 때에 연영전 을 집현전으로 개칭하고 대학사, 학사를 두어 시강기관으로 삼았지만 충렬왕 이후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정종 때 집현전이 설치되었으나 얼마 뒤 보문각으로 개칭되었고 이것마저 곧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조선왕조 건국 이래 표방하여 온 유교주의 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유교주의적 의례, 제도의 확립은 오랜 기간을 요하는 과제였고, 명나라와의 사대관계 또한 건국 이래 어려운 과제였기에 이 두 과제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과 글을 높이어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풍습을 갖도록 북돋을 필요가 있었다.

이에 세종원년인 1419년 좌의정 박은이 문신을 선발하여 집현전에 모아 문풍을 진흥시킬 것을 건의하자, 세종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420년(세종 2) 3월 16일에 정식으로 집현전의 직제가 마련되어 궁궐 안에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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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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