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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의 집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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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조선시대의 집현전이라고 하면 1420년(세종 2) 3월에 설치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집현전은 세종과 세종대를 운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때에 집현전을 설치하게 된 목적은 조선이 표방한 유교정치와 대명 사대관계를 원만히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에 있었다. 이에 따라 유망한 소장학자들을 채용하여 집현전을 채웠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특전을 주었으며 사가독서(賜暇讀書) 를 내려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에 소속된 관원은 경연관(經筵官), 서연관(書筵官), 시관(試官), 사관(史官), 지제교(知製敎)의 직책을 겸하였고, 중국의 옛 제도를 연구하거나 각종 서적의 편찬사업에 동원되는 등 그들의 직무는 주로 학술적인 것이었다. 왕은 이들이 학술로써 종신할 것을 희망하였으므로 다른 관부에는 전직도 시키지 않고 집현전에만 10년에서 20년 가까이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쟁쟁한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이러한 인적 자원이 바로 세종대의 찬란한 문화와 유교정치의 발전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집현전에서 이루어진 사업 가운데 유교적인 의례, 제도 즉, 국가의 유교적 의례인 오례(五禮)와 사서(士庶)의 유교적 의례인 사례(四禮) 등 유교적인 제반 제도의 정리는 유교정치의 기본이 되는 작업으로서,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옛 제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였다. 중국의 옛 제도에 대한 관심은 개국 초부터 있어왔으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바로 세종이 즉위한 이후부터였으며, 그 중심이 된 기관도 바로 예조,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 집현전 등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의례, 제도의 틀은 세종 대에 이 곳 집현전에서 짜여져서 유교정치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당시에 정리된 의례, 제도의 틀은 중국의 옛 제도에 의한 것이었으나 왕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비판, 연구하여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주체성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왕의 주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이 집현전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는 집현전에 모아 기른 인재들 가운데 일부-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이선로, 성삼문 등-를 궁중의 언문청 또는 정음청에 따로 모아 보좌를 받으면서 훈민정음 만들기를 주도하여 1443년(세종25) 12월 훈민정음 창제를 완성하고 그보다 3년 뒤인 1446년(세종28) 9월에 이를 반포했다.
 
참고문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세종문화사대계 1.어학,문학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8
『세종문화사대계 4.윤리,교육,철학,종교편』,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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