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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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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시피,‘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불리는
대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자 이름으로서의
<훈민정음>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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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하나는 문자 이름으로서의 훈민정음이다. 이곳에서는
이 두 가지 훈민정음에 대하여 다 언급하기로 하되, 훈민정음에
대한 정보의 가장 큰 원천은 무엇보다도 책자 <훈민정음>
속에 들어 있으므로 <훈민정음>의 체재를 살펴가면서
언급해 나가기로 한다. <훈민정음>은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에 간행되어 나왔다. <세종실록>
권 113의 28년 9월조 끝에서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룩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 끝부분에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이라 기록되어 있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훈민정음>은 우리
나라에서 그 이전에 간행되어 나온 책자들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체로 오늘날의 마침표 내지 온점(.)에
해당하는 구점(句點; 右圈點)과, 쉼표 내지 반점(,)에
해당하는 두점(讀點; 中圈點) 및 파음자(破音字)의 성조를
표시하는 권성(圈聲)이 사용되어 있는 것이다. 구두점과
권성이 다 사용된 <성리대전(性理大全)>(1415년)의
체재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훈민정음>에도
그것들이 다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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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대전>은 세종 원년(1419년)에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가 우리 나라의 사신을 통해 보내 준 책자
들이다. 세종은 이 <성리대전>을 기반으로 하여 새 문자를 창제하고
예악(禮樂)을 정비하는 등 문화 정책을 펼쳐
나갔을 뿐 아니라, 몇 가지 중요한 책자의 체재도 그 문헌을 본떠 만들었다.
그만큼 세종이<성리대전>을 중시하였
다고 할 수 있다.
이 <훈민정음> 외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1447년)도
구두점과 권성을 다 사용한 문헌이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 간행되어 나온 어떤 문헌에 구두점과 권성을 다 사용한 일은 세종
당대의 문헌에만 국한되어 있다.
이 <훈민정음>은 33장(張)짜리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나왔다.
그런데 이 목판본의 밑바탕이 되는 원고(板下)
의 글씨를 쓴 사람[板書者]이 세종의 셋째아들이었던, 당대의 명필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이기 때문에,
이 책자는 서예학의 측면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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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서울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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